아이를 돌보지 않고 검색에만 몰두하다.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게 뭘까? 곁에 잠든 사랑스러운 아이의 얼굴? 역시 근처에 잠든 상대적으로 덜 사랑스러운 배우자의 얼굴(설마)? 아니면…… 휴대폰?
나의 경우 소소가 태어난 이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부터 열었다. 아이가 깰 새라 숨죽이고 검색을 시작했다. 새벽에 뜬 핫딜, 중고장터에 걸어둔 육아용품 키워드 알림, 밤사이 지나간 육아 모임 단톡방의 대화, 아이와 갈만한 곳, 연령에 맞는 동화책, 오감을 자극한다는 장난감과 교구, 아기들이 잘 먹어준다는 간식까지. 혹시라도 중요한 정보를 놓칠 새라 꼼꼼히 훑었다. 근무시간, 집안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이렇게 보냈다.
나는 본래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결정하는 걸 못하기 때문이다. 식사 메뉴를 선택할 때마다 어려운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고, 이런 사소한 걸 그리 오래 고민하냐며 동행자가 나를 한심하게 볼 것 같은 생각에 쫓긴다. 심리학 책에서는 결정 장애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는데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집에서는 남편이 우리 집의 결정맨이었다. 물건을 살 때도 음식을 주문할 때도 늘 직장상사처럼 남편에게 결재를 받았고 그게 편했다.
쭉 이렇게 살아온 내가 갑자기 미지의 영역인 수많은 아기 용품을 알아보고 결정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예전처럼 남편의 필터링을 받고 싶었지만 너무 살 게 많아서 그때그때 물어보기가 불가능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내가 대부분의 구매를 혼자 결정하게 되었다. 여전히 결정 장애의 최고봉에 서있는 채로.
우선 아이의 연령에 필요한 게 뭔지부터 알아야 했다. 그런데 그 ‘필요하다’는 것의 기준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범위는 무한대였다. 누군가는 그거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하는데, 다른 집 애는 관심이 없었단다. 또 그놈의 ‘국민 육아템’은 왜 그렇게나 많은지.
그냥 적당히 유명한 걸로 하나 사서 써보고 별로면 딴 걸 사면 되는 일이었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가령 아기 빨대컵이라도 하나 사려면 마치 평생 물은 그 컵 하나로만 먹을 것 같은 사람처럼 현미경식 검색을 했다. 하지만 원하는 조건을 다 갖춘 완벽한 물품은 드물었고 수백 개의 후기를 다 훑다 보면 결국 누군가의 ‘별로였어요’ 후기가 나타났다. 그럼 새로운 후보를 지정해 처음부터 다시 분석을 시작했다. 그때는 그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잠깐 쓰는 거 굳이 비싼 거, 새 거 사주지 않을 거야. 그 돈을 모아서 나중에 아이랑 여행 다니고 아이가 진짜 하고 싶은 거 있을 때 그때 지원해줘야지. 난 합리적인 엄마가 될 거야.’
소신 있는 엄마의 출발은 당찼다. 하지만 어느 순간 머릿속에 욕망의 스위치가 켜졌다. 세상에는 엄연히 물건의 가치에 맞게 책정된 시장가격이 존재하지만 그 대원칙을 무시하고 싶어졌다. 싸고 좋은 것을 찾아 온 인터넷 사이트를 헤집고 다녔고 핫딜을 기다리느라 잠을 줄였다. 상태 좋은 중고를 놓치지 않기 위해 종일 중고거래 게시판을 들여다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여러 번 성공을 하자 이성을 잃고 옛날 말로 횡재, 요새 말로 득템이라는 쾌감에 빠져들었고, 점점 더 몰입했다.
친정엄마는 종종 제발 휴대폰 좀 그만 보라고 말씀하셨다. 스스로도 너무 검색을 많이 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속으로 합리화를 했다.
‘괜찮을 거야. 남편 성격이 좋으니까 애랑 계속 같이 있으면 아빠 성격 닮아가겠지. 그럼 애한테 훨씬 더 좋은 거 아냐? 그리고 나도 지금 아기를 위해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걸. 아이에게 도움 된다는 어떤 정보도 놓치고 싶지 않아.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만큼 싸고 좋은 물건을 얻는 거지. 나의 노동으로 지금 가정 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는 거라고. 남편은 육아를 하고 나는 정보와 물품을 조달하고. 이게 우리 집의 완벽한 업무 분담이야.’
아이를 위한 용품을 검색하느라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는 게 지금 보면 앞뒤가 전혀 안 맞는 논리지만 그때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오감을 자극하는 장난감을 사주지 않으면 내 아이만 뒤쳐질 것 같았고 애들이 잘 먹는다는 간식을 사주지 못하면 내 아이만 먹는 즐거움을 모르고 클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검색에만 몰두하는 자신을 방어하기 급급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집안 여기저기에서는 내가 좋은 가격으로 사 모은 물품들이 제 구실을 다하고 있었지만, 정작 엄마인 나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 꿈꿨던 합리적인 엄마는커녕 그냥 자기 합리화만 일삼는 엄마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