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첫 만남은 깨나 어려워
인력거꾼 김씨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김씨보다 두 배 더 육중한 손님,
전 재산을 털어도 못 살 비싼 가방을 인력거에 실어서가 아니었다.
세상에 그놈/그것들보다, 심지어 인력거보다 무겁고 귀한 게 있었다.
편지.
그는 첫 번째 편지를 지닌 이래 지독한 긴장 상태였다. 그러나
-오늘도 못 준 겨? 대체 뭐 땀시?
편지를 전할 기회가 도처에 널렸음에도 그는 연일 미적댔다.
인력거 손님 십중팔구는 일본 앞잡이거나, 친일에 발을 담갔거나, 왜놈과 옷깃을 스쳤으니… 기회가 널렸다는 게, 말이야 바른말이었다.
그러나 매일 아침, 가장 먼저 태우는 손님으로 하루 운을 점치는 인력거꾼에게 ‘처음’이란 유별했다.
누구에게 첫 편지를 건넬꼬.
그는 손님을 고르고 고르다 코우즈키, 히로시 등 이름난 놈들 집 앞까지 서성였지만, 쳇. 갸들은 차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시간만 날렸지.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오늘 편지를 전하지 못하면, 쿠바리볼버가 저를 죽일 거였다.
-어제 우편국 가던 놈 줄 걸.
후회하며 중얼거렸으나, 이미 사라진 기회였고, 하필 오늘은 손님도 없었다.
까다롭게 안 굴 테니 한 놈만 타라, 속으로 빌고 있는데,
저기요! 누군가 그를 불렀다.
힐끗 보니, 남자가 아픈 아이를 들쳐업고 있었다.
편지가 급한데 모른척해? 애가 많이 아파 보이네.
그렇게 김씨는 남자와 아이를 태우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빨리 데려다주고 다음 손님을 태우든, 제 발로 종로서를 들어가든, 뭐든 해야 하는데
마음이 콩밭에 있으니, 운전이라고 잘 될 리가.
콩.
모퉁이 담벼락에 인력거를 부딪치고 말았다. 살짝 부딪쳤음에도, 저보다 귀한 인력거 손잡이가 문적문적 부서졌다. 남자 손님은 멀쩡해 보이는데, 아, 손님 지갑이 저기 떨어졌네.
-아이고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다친 데도 없고 지갑이야 주우면 되죠.
온화한 목소리의 남자는, 김씨를 책잡지 않고, 직접 지갑을 주우러 갔다.
다른 놈 같았음 벌써 김씨 머리를 후려갈겼을 텐데. 다행이었다. 아니다. 다행이 아니구나. 아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휴 미안해라. 땀에 젖은 머리, 창백한 얼굴 아래, 아이의 옷 단추가 잘못 채워진 게 보였다. 바람이 찬데 몸 더 상할라. 옷을 바로 해주던 김씨는 보았다. 아이의 몸이 붉었다. 방금 생긴 듯, 싱싱한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얘. 김씨가 흔들었으나 정신을 잃은 아이는 눈도 뜨지 못했는데
-가시죠.
인력거로 돌아온 남자는 무심히 길을 재촉했다.
김씨는 주머니에 지갑을 넣는 남자, 그의 허리를 보았다. 허리를 부드럽게 감싼 가죽 혁대에 피가 묻어 있었다. 혁대의 너비는, 아이 몸에 난 상처 길이와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남자에게 냄새가 났다. 김씨가 애써 잊은 냄새였다.
-먹장어 가죽인가요?
-내, 가죽 장사를 하지요.
먹장어는 팔딱거렸다. 온몸으로 외치는 살려달란 비명이었겠으나, 사람들은 장어를 잡아 가죽을 벗겼다. 사방에 피가 흩어졌다.
왜놈들이 가죽을 쓴다고 소, 돼지를 잡는 통에, 조선 바닥 가축 씨가 말랐단 얘긴 들었다. 그렇다고 이 한적한 바닷가, 먹장어에까지 손을 뻗을 줄이야.
김씨는 물을 끼얹어 피로 물든 바닥을 씻었다. 핏물은 바다로 섞여 들어갔다. 그의 발가락을 감싸는 파도와, 바다를 붉게 물들인 건 먹장어 피만이 아니었다. 하나뿐인 벗, 박씨 피도 함께였다. 그는 장어 손질이 서툴다고 왜놈에게 맞아 죽었다.
비린내. 김씨는 토기가 올라왔다. 벗도 죽고 장어도 죽었는데 혼자 살아남은 제가 역겨워 더는 여기 살 수 없었다. 무작정 경성으로 올라와, 가진 모든 걸 털어서 산 인력거.
그런데 오늘 인력거에 올라탄 놈이, 먹장어 가죽을 팔아먹는 놈. 그 가죽으로 혁대를 만들어 아이를 개 패듯 패는 놈이라니.
너 잘 걸렸다.
-여기 옷자락이 올라갔네요.
김씨는 인력거에서 내리는 남자의 매무새를 정리 해주었다. 그리고 그 찰나, 옷 주머니에 편지를 넣었다.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김씨가 인사를 남겼다. 아무도 듣지 못할 낮은 목소리로.
-잘 가라.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