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오리발
아빠, 엄마, 아이 둘.
아침이면 옹기종기 여덟 개의 발이 이불에서 일어나고,
저녁이면 동그랗게 밥상에 모여 앉는 집.
웃음과 눈물과 다툼과 평안, 그 모든 걸 품은 집이 어느 날 비워졌다.
길 건너 코우즈키가 살게 되었기 때문에.
코우즈키, 그 지랄 맞은 놈은, 조센징이 맞은편에 사는 걸 놔두지 않았고,
사람들이 쫓겨나고 버려진 건물은 나날이 황폐해졌다.
그러고 보면, 식구들이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을 때,
집도 사람의 온기를 나눠 먹는 모양이지.
전화를 걸기 전, 고운은 폐허가 된 그 집에 며칠이고 있었다.
길 건너
아이가 심부름하는 것,
청소하는 것,
전화가 있는 방에서, 젖은 수건으로 코우즈키 딸을 씻기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는데,
코우즈키 집에 함께 지내는 소녀들 중 누구 하나 숙희에게 말을 거는 이가 없었다.
그 며칠을, 내내, 아이는 혼자였다.
그래서 당연히 별말 없이 편지를 가지고 나오라는 제 말에도 알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오라버니가 뭐라고 편지를 보냈나요?
뭐라고 해야 할까.
당황스럽게시리.
한 번도 생각 못 한 전개였다.
-…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래요. 너, 아니, 동생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데요.
잠깐의 침묵 끝에, 고운이 뱉은 말들은,
민형이 고운에게 보냈던 편지, 거기 적혔던 말이었다.
간신히 넘긴 위기. 이제야말로 약속 장소로 소녀를 불러내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편지를 받은 게 없어요. 혹시 또 편지가 오면 전화 주시겠어요?
없다니?
전화를 끊은 고운은 멍했다.
그날 그 밤, 편지를 꼭 쥐고 있던 것처럼,
아이는 순순히 편지를 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와.
망했네.
고운이 이 막막함을 해소할 새도 없이,
민우의 비보가 전해졌다.
두 번째 편지의 날이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