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Santa close to you
겨울바람은 나날이 거세졌다. 그러나 민형이 보내온 외투와 구두로 중무장을 한 민우는 추위 무서운 줄 몰랐다.
-누나 이거 먹어.
양과자, 옷, 학비 모두 고운의 주머니에서 나온 줄 모르고. 괜찮아. 마다할세라, 부서질세라, 고운의 손에 조심스레 비스킷을 쥐여 준 민우는 허겁지겁 관이에게 달려갔다. 학교를 향하는 뒷모습이 마냥 씩씩했다.
뒤통수가 사라질 때까지 민우를 바라보자니, 고운은 문득 경수 생각이 났다. 그 애도 저렇게 학교에 갔겠지. 동경에선 뭐 하고 있으려나. 아, 공부한다 그랬지. 동생한테 편지 쓸 시간도 없나. 흘러가는 생각에, 아니다, 고삐를 잡은 고운이 돌아섰다.
편지. 어느덧 경성엔 행운의 편지가 만연했다. 달라질 건 없었다. 사는 건 언제나 행운과 불운을 지치도록 오가는 일이었으니. 주로 불행에 발을 담근 것 같았지만.
그러나 보통학교 교사인 마츠모토는 별것도 아닌 종이 쪼가리에 빠져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거슬렸다. 황국신민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이 조센징 아이들.
-너 이리 와.
툭하면 하는 가방 검사였지만, 오늘은 교문에서부터 시작한 잡도리가 유독 신경질적이었다. 진작 편지를 잃어버린 민우에겐 에라 그까짓 가방 검사였지만, 관이는 어쩐지 초조해 보였다. 안 봐도 뻔했다. 착하고도 재수가 … 불쌍한 녀석.
하지만, 쿠바리볼버가 만든 행운의 편지는 관이만의 것이 아니었기에. 민우는 관이에게 고갯짓 했다. 숨기고 오자. 그래.
두 아이는 슬금슬금 뒤로 빠졌고, 마츠모토는 늘어선 아이들의 오와 열이 흐트러지는 걸 놓칠 리 없었다. 어이!
또다시 뜀박질이 시작됐다.
민우와 관이. 관이와 민우.
유독 재수가 없는 관이지만, 오늘만큼은 민우가 관이의 불운을 압도해야 했다. 일부러 천천히, 연신 뒤를 돌아보며 달리는 민우를 마츠모토가 잡아챘다. 너 이 새끼. 멱살을 잡아채고 흔드는 통에, 민우가 휘청이며 진흙을 밟아댔다. 가방에서 책이 후두두 떨어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뭐야! 없잖아 편지.
마츠모토는 가차 없이 민우를 팽개치고 관이에게로 달려갔다.
제발. 제발. 간절한 민우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곧 마츠모토에 붙들린 관이가 끌려왔다. 마츠모토 손에는 빳빳한 행운의 편지가 들려있었다.
큰일이다. 민우의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그때, 관이가 속삭였다.
숨겼어.
저건.
다른 거야. 누가 나한테 행운의 편지를 보냈더라고.
다행이다.
다행은, 너.
나 왜?
구두.
둘은 어렵게 편지를 지켰다. 비싼 값을 치르고.
민우는 더럽혀진 구두를 보며, 관이 앞에서 괜찮아,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을 참고 참다 집 앞에서 고운을 맞닥뜨린 순간, 모든 설움이 퍽 터져 나와. 그만 울어버렸다.
괜찮아. 민우야. 누나가 구두 새로 사줄게.
-아니야 누나. 구두가 망가진 게, 그게 형의 마음을, 형을 망가뜨린 것 같아서 그래.
-… 미안해 민우야. 다 나 때문이야.
누나.
민우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어지는 말을 들으면, 더 힘들어하겠지만
사실은. 고운이 천천히 입을 여는 그때. 저편에서 민우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민형이한테 소포가 또 왔어.
물론, 가장 당황스러운 건 고운이었다. 저건 나 아닌데. 죽은 민형이가.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