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환장의 짝꿍
책, 필기구, 이런저런 살림. 민형의 이름으로 온 물건들은 그동안 고운이 마련했던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
-여기, 옷에 얼룩이 있네. 뭐지?
아주머니가 얼룩을 보고 문지르는 손길에 고운의 마음이 툭 굴러 떨어졌다. 그건 작전을 마치고 만주로 온 민형이 입었던 옷. 고운과 민형,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몇 번이나 빨았지만 끝내 지우지 못한 핏자국이었다.
민형아. 이거 정말 네가 보낸 거니?
차라리 나를 죽이러 와주면 안 될까?
고운의 주먹 쥔 손이 하얗게 질렸다. 아주머니가 옷 왼쪽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자 숨이 멎을 것 같았고.
저 안에 민형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가 있으면 어쩌지, 그 총을 쏜 사람이 나라는 게 알려지면.
-얘는 무슨 돈이 있어서. 또.
하지만 아주머니 손에 딸려 나온 건 돈이었다.
하.
그 순간 고운이 토한 한숨에 섞인 건, 지연된 고백에 대한 안도였을까, 계속될 거짓말에 따른 괴로움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발신인을 확인해야 한다는 거였다.
우편국은 아비규환이었다.
-행운의 편지는 안 받아요.
-이걸 보내야 내가 살아.
-저한테 행운의 편지 보낸 사람 알 수 있을까요?
-그걸 어떻게 찾아요.
고운은 늘 가던 직원에게로 향했다. 직원은 익숙하게 고운의 돈을 챙기며 물었다.
-오늘도 상해에서 보낸 걸로 처리할 물건이 있어요?
-아니요. 나 말고 또 경성에서 상해발 우편 보낸 사람 있어요?
그런 사람 없는데. 직원은 고운이 챙겨 온 소포의 포장을 들여다보더니 덧붙였다. 이거 상해에서 보낸 게 아닌데요. 그럼요? 길림이요.
거긴 가본 적 없는데. 길림에 누가 있나. 해결의 실마리는커녕 의문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안 그래도 심난한 고운의 눈에, 범상찮은 이인조가 들어왔다.
수전노 홍씨와 춘숙이었다.
귀는 멀쩡하지만 남의 말을 듣지 않는 홍씨와 붕대 칭칭 앞이 안 보이는 춘숙.
꺽다리 홍씨와 땅딸보 춘숙.
오른손잡이 홍씨와 왼손잡이 춘숙.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반대였으나, 시장 골목 둘도 없는 짝꿍 한 쌍은 오늘도 어김없이 붙어있었다. 다만,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이곳이 우편국이라는 거고, 뵈는 것도 없을 춘숙이 홍씨를 부축하고 있었다.
홍씨 꼴을 보아하니, 불그죽죽 달아오른 얼굴, 달달 떨리는 다리, 온갖 구멍에서 땀이 쏟아지는 게, 모르는 사람이 봐도 수상쩍었다. 홍씨가 세 번째 행운의 편지를 전달할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