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펑
그러니까 누가 행운의 편지를 전할지 고민하던 자리.
아휴. 내가 저걸 어떻게 전해. 다들 두려움에 떨고 있던 그때
- 저게 뭐라고. 대충 전하면 되지.
홍씨는 분명 코웃음을 쳤다.
그런 위인이었다. 돈 말고 모든 것에 시큰둥한 사람.
시장에 불량배가 나타나면, 한 대 맞아 붉어진 얼굴보다 바닥에 굴러 멍든 과일에 분노했고,
귀신같은 손놀림으로 손님이 집어 든 상품을 하품으로 바꿔치기했으며,
시장 반대편에서 떨어진 동전 소리를 듣고 냅다 달려가는, 한 푼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겨… 서인가. 고운은 홍씨가 쿠바 리볼버에게 편지 살 돈을 모을 때, 어거지로 낸 몇 푼이 떠올라 저리 바들바들 떠는 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이러나저러나 홍씨도 고운도 속이 탔다.
제발 누구에게라도 편지를 전해야 할 텐데,
그래야 내가 나서든 말든 할 텐데.
춘숙도 답답했는지, 보이지 않겠지만서도, 보다 못해 입을 열었다.
- 했어?
- 아니.
- 했어?
- 아직. 그런데
- 뭐가 그래?
- 쌌어.
이런. 잔뜩 긴장한 나머지 홍씨가 옷에 찔끔 실수한 모양이었다. 우편국 구석에 춘숙을 세워놓고, 바지를 수습하러 화장실에 가는 걸음이 영 어기적거렸다.
어후. 냄새.
물론, 화장실도 이판사판이었다. 날이 추워 청소를 미룬 건지, 밀려드는 사람에 청소가 무색해진 건지,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불쾌한 냄새에 질식하게 생겼다. 안 되겠다. 그냥 말려야겠어. 그러나 돌아서는 홍씨를 화장실로, 그것도 화장실 바닥으로 밀치는 거센 힘.
철퍽.
엎어진 홍씨가 잽싸게 일어났지만 옷은 이미 오물 범벅이었다. 털어지지도 않는 게 아무래도 옷을 버린 것 같았다. 족히 삼 년은 더 입을 수 있는데.
씨! 성이 난 홍씨는 저를 밀친 놈을 봤지만, 대번에 알았다. 단정한 머리, 좋은 옷, 반짝이는 구두. 한따까리하는 놈이었다. 전화국 나카무라였다.
홍씨는
- 어이!
그쪽이 밀쳐서 내 옷이 더러워졌는데 물어주시오. 말하려 했지만, 거기! 이보쇼! 아무리 곁에 얼쩡대도, 나카무라는 홍씨를 힐끔 보지도 않았다.
홍씨는 저가 그새 귀신이라도 됐나 싶고, 분통이 터져 죽을 것 같았는데, 순간 머리가 번뜩였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댔지.
- 다른 게 아니라 내 넘어지며, 여기, 오물이 튄 것 같소.
그 말에 나카무라가 옷 한 귀퉁이를 봤다. 괘씸한 놈 여태 다 들었으면서. 하지만 기회다. 나카무라의 시선이 돌아간 틈에, 홍씨가 특유의 날랜 손으로 행운의 편지를 놈의 옷 반대편 주머니에 넣으려던 찰나.
나카무라가 홍씨의 손을 툭 쳐냈다. 바닥에 편지가 떨어졌다.
제기, 난장 맞을. 더럽혀진 편지도 문제였지만, 이제는 정말 나카무라 옷에 오물이 묻었다.
나카무라가 주먹을 쥐었다. 그 뒷일이야 뭐.
- 저러다 사람 죽겠네.
화장실 앞에서 홍씨를 기다리던 고운은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홍씨가 일을 쳤구나. 고운은 그를 붙잡고 물었다.
- 안에 누구누구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안은 벌써 홍씨 피로 뒤덮였다. 피만? 아니. 힘 빠진 홍씨가 또다시 지렸다. 가랑이가 젖는 걸 본 나카무라는 한심하다는 듯 입가에 조소를 흘렸다.
홍씨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썩을 놈. 너가 더럽힌 거야. 너만 아니었어도 삼 년은 더 입을 옷을. 삼 년은 더 살아갈 것을.
그리고 마침내 정신을 잃고 화장실 문간에 쓰러졌다.
나카무라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물에 손을 씻었다. 기분이 꽤 좋았다. 우편국 놈들이 지랄하는 게 거슬리던 차였다. 전화는 별거 아니라며 뻐기는 마사키가. 조센징 주제에 제 밑에서 일하는 태영 놈이, 행운의 편지 같은 시답잖은 게 뭐라고 지랄하는 모두가 그의 속을 긁어댔다.
그때, 쿵, 작게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카무라가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 있어야 할 홍씨가 없었다. 그가 건네려던 편지는 그대로였는데.
뭐지. 나카무라가 편지를 내려다봤다. 봉투 끝에 검은색 삼각형 둘을 맞댄 리본 같은 문양이 작게 그려져 있었다. 우편국에서 본 다른 편지에는 없었지 아마?
그리고 살짝 문이 열리더니 그 틈으로 작은 빛이 들어왔다. 불 붙인 연초였다.
- 너 연초 태우나 감시하러 왔지.
들판에서처럼 백탁 아저씨가 잡으러 올 리 없겠지. 고운은 던진 연초는, 쌓이고 쌓인 오물에서 피어난 가스를 만났다.
펑.
우편국 화장실에 폭발이 일었다.
* 14. 어디선가 너를 찾는 전화가 울리고
사망한 순사 히로시와 혼동의 여지가 있어, 우편국 관리인 이름을 히로시에서 마사키로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