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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편지

31. 폭발이 지나간 자리

by juyeong

우편국 화장실은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천장에 남은 그을음과 사방에 튄 똥물, 그리고 머리가 사라진 나카무라의 시신. 다들 속이 뒤집힐 것 같았는데


- 여기 뭐가 있습니다.


순사 하나가 나카무라의 주먹에서 종이를 캐냈다. 용케 보존된 종이조각을 받아 든 타쿠야. 곱고 하얀 그의 손은 분 냄새가 날 듯했으나, 얼굴은 꿈에 나오면 잠이 깰 만치 험상궂었다. 조선총독부 경부다웠다.

종이를 살핀 그는 미간에 더 깊은 주름을 세우고 화장실을 나갔다. 뚜벅뚜벅,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걸어간 곳은 같은 건물, 우편국 마사키의 사무실.

쾅.

연일 기록적인 수익 성과로 거들먹거리던 마사키는 갑작스러운 폭발 사건에 거북이마냥, 달팽이마냥 사무실 책상 아래 쭈그리고 있었는데.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간 타쿠야는 밭에서 양파 뽑듯, 마사키를 잡아 세웠다.


- 니 놈 짓이야?

- 뭐가요?


그는 나카무라 손에서 발견한 종이조각을 내밀었다. 거기엔 서로 맞닿은 검은 삼각형 그림이 있었다. 먹장어 가죽 공장장, 군인, 순사 히로시에 이어 삼각형이 그려진 네 번째 행운의 편지. 이 편지를 받은 놈마다 죽는 게 분명 누군가 일을 꾸미고 있는데


- 저는 몰라요. 모르는 일입니다요.


타쿠야의 추궁에 마사키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으나,


- 찬찬히 생각해 봐. 그럼 뭔가 떠오를지도.


끝내 질질 순사들에 끌려갔다.

타쿠야는 생각했다.

마사키는 정말 아무 상관없을지 모른다. 허나 전화국 우위에 서겠다고 경성에 행운의 편지를 뿌린 놈의 얄팍한 술수는 백번 혼쭐 나도 마땅하지. 암.


- 아니야. 나 아니라니까.


복도를 끌려가며 절규하는 마사키의 목소리는 금방 흩어졌다. 거센 발버둥에 벗겨진 구두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잠시 후 그 구두를 주워 든 건 태영이었다.

그날 백화점에서 고운이 고민하던 것과 같은 구두.

태영은 그녀가 더욱 궁금해졌다.

창밖 멀찍이 보이던 고운이 어떤 생각이었을지도.


후.

백탁은 한숨을 쉬었다. 어찌나 무겁게 내쉬던지, 길림 땅이 꺼지는 줄 알았다.

에잇. 이놈의 반송 도장.

고운이 있을 법한 곳, 예전 주소, 먼 친척 집, 상해, 곳곳에 편지를 보냈으나 그때마다 돌아온 건 제가 보낸 편지였다.

지겹다. 지겨워. 그가 확인도 않고 바닥에 팽개친 편지 사이 봉투 하나가 보였다.

민형이 형에게. 민우가. 소포 잘 받았어.

경성에서 온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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