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긴긴 그림자
아아.
엄살은.
고운은 민우 이마에 붕대를 붙여주었다. 주구장창 하늘만 보더라니, 관이와 민우 두 아이 이마에 결국 혹이 생겼다. 봉긋이 아니었다. 이리 쿵 저리 쾅.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쳐서는 거진 뿔이 솟아있었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민우가 물었다.
- 누나.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질 일이 뭐가 있을까?
다리 위에서 발을 헛디뎠나 보지.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그건 좀 아쉬운데. 아! 그 비행기라는 걸 타다 떨어졌으면… 누나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만할게. 표정 풀어.
민우가 민형과 닮은 게 또 있다면, 남들은 모르는 고운의 얼굴을 귀신같이 읽는단 거였다.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진다는 게 말이야 신비롭지. 바른말로 누가 죽었단 얘기밖에 더 돼. 고운은 춘숙이 겪은 죽음까지 알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죽었다.
너무 많이 죽었다.
-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죽음을 소망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그 와중에도 시장통에서 풍기는 밥 냄새는 식욕을 자극했다. 나한테 허기를 느낄 자격이 있나, 헛웃음을 지으며 시장을 빠져나가는 고운의 눈에 숙희가 보였다. 얼굴을 반이나 가렸건만 대번에 알아보고
숙희.
부를 뻔한 걸 용케 참았다. 아이가 곁을 스쳐 가고 뒷모습을 보자, 고운은 화가 났다.
숙희 다리에 선명한 붉은 줄이 보였다. 회초리 자국이었다. 안 그래도 야윈 애를, 때릴 데가 어딨 다고.
- 누구야.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린데. 뭐지? 숙희가 뒤를 돌았을 때, 저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숙희는 다시 걸었다.
숙희가 시장에 오는 일은 어르신 딸 행세를 할 때뿐이었는데. 지난번 연못에 빠진 후로, 다른 아이들처럼 자잘한 심부름도 하게 되었다. 대신 얼굴은 가려야 했다. 남들 눈에 들지 않도록. 뭐, 누가 나를 유심히 볼까 싶다만.
어떤 벌은 상이 되기도 했다.
혼자 밖을 걷는 것이 얼마만 인지.
숙희는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앙상한 나무도, 시린 바람도, 제 팔에 들린 무거운 짐조차 좋았다.
어르신 집으로 들어가며 벌써 다음 심부름이 기다려졌다.
- 염병. 아주 염병이다.
붉은 종아리가 눈에 밟혀, 내내 그림자처럼 숙희의 뒤를 따라 걸은 고운이 중얼거렸다.
주먹을 어찌나 꼭 쥐었는지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