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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편지

37. 점박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

by juyeong

재수가 없으려니.

함께 쿵쾅거렸으나 진즉 뿔이 가라앉은 민우와 달리, 관이 이마의 멍은 오래도록 가실 줄을 몰랐다. 덕분에 새 별명이 생겼지.


- 얘! 점박아!


안 일어나냐. 밥 먹어라. 몇 살인데 밥투정이야. 글씨도 개발새발. 쟤는 뭐가 되려고.

시장 사람들이 한 마디씩 보탤수록, 관이는 속이 상했다. 재수 없단 말도 진절머리가 났는데. 뭐? 점박이? 동네 똥개 이름으로 불리다니. 더는 못 참아.


- 점박!


씨이! 그러나 그가 화를 내며 돌아봤을 때, 거기엔 학교의 호랑이 교사 마츠모토가 있었다.

어이쿠. 네. 점박입니다.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요.

마츠모토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앉은 관이는 마음이 선득했다. 선생님이 저에게 좋은 말을 할 리가 없었다.


- 이번 시험에서 성적이 조금 올랐더구나.

- 네?


예상치 못한 전개!

이런 말은 시장 사람 다 같이 들어야 하는데. 그럼 점박이가 뭐야. 똑똑이라고 불리겠지. 그래. 내가 이번 시험을 평소보다 조오금 더 잘 보긴 했지. 책도 한두 장 더 읽고, 머리에 좋다는 고등어 껍질도 열심히 먹었는데. 설마 민우보다도 잘 본 건가?


- 그래서 말인데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하는 건, 조선어나 일본어나 같은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관이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뭐지. 종이를 받아 든 관이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학도병.


- 안 돼. 죽어도 안 돼. 차라리 나를 보내라 이놈아.


그날 밤, 학도병 징집 서류를 받아 든 승면은 울면서 관이를 때렸다. 퍽퍽 내리치던 손은 이내 아이를 붙들고 끌어안았다.

아버지. 하며 관이도 울었다.

부자가 얼싸안고 우는 소리가 퇴근하는 고운의 귀에 들렸다.


- 이전에 간 놈들도 다 죽었다며.


그 말이 고운의 발을 붙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경수를 떠올렸지.

숙희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오라버니 경수가 동경으로 공부 가면서, 코우즈키 집에 맡겨졌댔는데. 그 애는 정말 동경으로 간 걸까.


-안 되겠다. 편지를 전해. 선생님에게.


승면이 관이에게 속삭였다.

고운의 행선지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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