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땜
민우가 국숫집 이층 문을 빠르게 두드렸다.
누나! 옆방에 누가 며칠 지낸다는데 괜찮아?
응.
하고 넘길 게 아니었다. 그날 고운에게 조금만 더 정신이 있었다면 말이지. 허나 그럴 여유가 없는 게 그는 오늘 밤 학교로 들어가서 마츠모토를 처리해야 했다. 못해도 내일 아침까지 꼭.
물론, 관이가 편지를 잘 전달하는 것부터 도와야 했다.
전일 담 넘어 들은 부자의 계획에 따르면, 승면이 관이와 함께 움직일 모양이었는데. 그 아들에 그 아버지라고. 승면 또한 재수 좋은 위인은 아니었다. 승면도 이를 알아서 밤새 고민했지만,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겠네…
-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떡하지.
이 재수 없음을 어떻게 떨칠꼬. 좌판을 펼치고 앉은 승면은 하염없이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좌판에는 온갖 떡이 있었다. 한 번 씹으면 입에서 탁! 꿀이 터지는 떡, 겉에 고이 삶은 팥이 알알이 붙은 떡, 소복이 눈 내린 것처럼 하얀 설기에, 번지르르 기름이 발린 절편. 하나하나가 어찌나 유혹적인지, 방금 밥을 먹어 배가 불러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쩌억 손을 뻗어 하나 훔치려는 사람이 매일 몇이나 있었는데. 오늘도 가만히 넘어가질 못하고 웬 걸뱅이가 들이닥쳤네.
시장 사람들은, 승면이 불청객을 쫓아내려 또 빗자루를 휘두르겠구나. 혀를 차는데.
이 양반이 눈 뜨고 자나. 걸뱅이가 떡을 집어 먹고 튀는데 가만히 있는 게 아닌가.
- 안 잡네?
시장 저짝으로 튀어가던 걸뱅이가 뚝 멈춰 섰다. 으이구. 입술은 번들번들해갖고.
여기 시장에 장님이 있다더니, 떡집 사장이었나? 퍼뜩 생각이 든 그는 간도 크게 다시 좌판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허겁지겁 떡을 먹기 시작했다.
곁에서 말리던 사람들도 하나둘 동참해 떡을 집어 먹는데.
이 양반이 밤을 새더니 미쳤나. 큰 소리 한 번 안 치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
지켜보는 주변 상인들만 환장할 노릇이었지.
그리고 마침내 떡이 똑 떨어졌을 때, 마침내 승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됐어. 이제 오늘치 재수 없음은 다 소진한 거여.
이제 편지를 전하러 가야지.
한편, 고운이 승면의 뒤를 따라 사라졌을 때 사내 하나가 국숫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덩치에, 길에서 마주치면 금방 잊을 맨숭맨숭한 얼굴이었으나, 솥뚜껑 같은 손에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어쩌다 저렇게 된 거야. 설마 왜놈인가. 민우 어머니 눈이 흔들리는 순간.
- 안녕하세요.
남자의 입에선 조선말이 튀어나왔다. 제가 여기 며칠 묵겠다고 연락드렸는데요.
- 아, 네. 근데 어떻게 알아서 왔대요?
그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 남자가 말을 잇기 전에
- 민우가 고운이한테 얘기는 했으려나.
머리로 생각을 한다는 것이 그만 뱉어버린 민우 어머니.
뭐라고요? 누구요? 되묻는 남자의 눈은 두 배, 세 배 커져 있었다.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어머니는 말을 돌리려는데.
- 아무튼. 그쪽 이름 이거 맞아요? 백탁?
- 예. 맞습니다.
백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