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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편지

42. 판도라의 서랍

by juyeong

투덜쟁이 마츠모토도 좋아하는 게 있었다.

요이땅. 출발신호와 함께 힘차게 내달리는 말들. 말이 발을 놀릴 때마다 강줄기마냥 쩍쩍 갈라진 근육이 다리에 솟아오르고, 촤르르 맞바람에 갈기가 흩날리면, 강하게 풍기는 거친 향기. 마츠모토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문턱이 닳도록 경마장을 드나들었다.

돈을 따면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돈을 건 말이 느리면, 직접 뛰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그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지.

채찍 대신 날아드는 칼에 버둥거리며, 마츠모토는 복도에서 인생 최악의 달음박질 중이었다.


고운은 다소 어이없었다.

고작, 칼 두 개 던졌을 뿐인데.

뒤뚱거리며 뛰는 건 그렇다 쳐.

앞이나 제대로 볼 것이지. 벽에 그대로 들이박아 기절하다니.

그녀는 기껏 꺼낸 세 번째 칼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다음부터는 꽤 수월했다.

마츠모토를 질질 끌고 교무실로 가려는데,

그놈 주머니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열쇠뭉치를 주웠고,

첫 번째 서랍을 열자, 비싸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녀가 백화점에 드나들면서 보던 물건들.

그것들은 하나같이 마츠모토가 아닌 다른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고운은 생각했다.

새끼가 참 성실하게도 도둑질했네. 역시 나쁜 놈은 하나만 하지 않아.


두 번째 서랍을 열자, 관이와 승면이 전달한 네 번째 행운의 편지가 있었다.

그거 외에는, 뭐. 촌지?

누구에게 받은 건지, 아님, 누구에게 주려는 건지. 것까지 상관할 건 아니지. 그만 돌아서려는 고운은 이상하게 마지막 서랍이 눈에 밟혔다.


-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결혼 선물로 상자를 주었대. 그리고 절대 열지 말라고 했지.


만주에서 민형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 그러니 안 궁금하고 배겨? 병이 날 정도로 상자에 든 게 궁금해진 판도라는 결국 뚜껑을 열어. 그러자 안에 있는 온갖 욕심, 질투, 시기, 질병이 빠져나왔대. 놀란 판도라가 상자를 닫았는데 그 안에 딱 하나 남아 있었대. 희망. 그래서 세상을 떠도는 온갖 악한 것들이 괴롭게 해도 사람들은 희망을 간직하게 된 거야.


마츠모토의 마지막 서랍에도 희망이 들었을까.

고운은 다시 열쇠뭉치를 들고 하나하나 꽂았다. 그리고

철컥.

마지막 서랍을 열었을 때 들어있는 건, 학생들 명찰이었다.


- 숙희야. 잘 지내. 잘 지내고 있어. 오라버니가 꼭 데리러 올게.


단번에 고운의 눈에 띈 이름. 경수.

숙희의 오라버니 경수의 명찰이었다.

순간, 고운의 마음 한구석이 뚝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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