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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편지

5. 이백 원어치 독립

by juyeong

예전에 뒷산에 들개무리가 있었어. 개새끼들이 어떻게 안 건지 밤이면 산을 내려와 우리 집 닭을 죽이는 거야. 한 마리, 두 마리 …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마당에서 밤을 지새는데, 그날따라 조용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깜빡 잠이 들었네? 싸한 기분에 눈을 뜨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 망할 것들이 이미 닭장에 있는 거라. 이놈들! 몽둥이를 쥐는데, 갑자기 닭 한 마리가 개한테 푸드덕거려! 덩치? 상대도 안 됐지. 닭 세 마리 모아야 개새끼 하나만 했나? 아니다. 한 네 마리? 아무튼 쬐깐한 놈이 죽자고 달려드는데, 보니까, 개가 지 새끼를 건드린 거 같더라고. 발에 차이고 물려 피를 흘리면서도 뎀비는데. 한참을 그러니 개자식들이 결국 깨갱하고 돌아갔어.

그래서 일곱이면, 왜놈 일곱을 죽이면, 저놈들도 우리한테 함부로 못 하지 않을까? 내 나라 독립은 못 해도 이 시장통 독립은 살 수 있을지 몰라.


이백 원.

중개인이 매긴 독립의 값은 이백 원이었다. 있는 사람에겐 별거 아니겠으나, 시장 사람들은 더 졸라맬 허리가 없었다. 사는 게 죽기보다 고됐고, 평생소원이 그야말로 누룽지였다. 그런 이들이 돈을 꺼냈다. 일원, 오십전 … 코 묻은 돈, 피 같은 돈을 모았으나


-얼마나 모자라?

-많이.


하늘에서 돈이 쏟아지면 좋겠다. 뾰족한 수는 없고 내리는 비를 보며 한숨이나 푹푹 쉬는데, 민우가 돈을 내밀었다.


-니, 어디서 난 겨?


전일,

고운은, 누나! 부르고 머뭇거리는 민우를 빤히 보았다. 어렵게 열린 입에서 이어진 말은


-누나, 혹시 돈 있어?

-얼마

-많이


그뿐이었다. 고운은 민우에게 돈이 왜 필요한지, 언제 돌려줄 건지, 뭐 하나 묻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민우 방 앞에 돈이 있었다.


-내가 뭐랬어. 부잣집 딸내미랬잖아.


글쎄. 지난 새벽, 고운은 산을 올랐다. 쏟아지는 비를 개의치 않고 걷던 고운은 정상 언저리에 멈춰 섰다. 덫에 여우가 빠져 있었다. 이만하면 되려나, 여우 가죽이 얼마나 하려나. 품에서 꺼낸 칼로 여우를 잡는 고운의 동작엔 군더더기가 없었다. 몇 번이나 동물을 잡아본 것처럼. 더한 짐승을 잡아본 것처럼. 튀는 피에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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