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총포상의 딸
그거 아니?
백날 귀하다 귀하다 해도 은이 금이 될 순 없는 거야.
천날 개냥이 개냥이 해도 고양이가 개가 될 수 없듯이.
만날 양반 행세를 해봤자 어쩌겠어.
태생부터 양반이 아닌데.
그러니까 고운의 아버지 개차반 양반이 가장 양반답지 못했던 건, 그놈의 성질머리였다.
총포상이라 그런가
그는 사람이 참 빨랐다.
3분이면 밥 다 먹고 숭늉을 들이켰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에 듣는 사람 숨이 꼴깍 넘어갔고.
번갯불에 콩 궈 먹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아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길에 동전 한 닢이 데구루루 굴러왔다.
동전을 떨어뜨린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먼저 줍는 놈이 임자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동전을 향해 달려들었다.
양반이라면 으레 뒷짐 지고 피할 법도 한데,
천출 습관 못 버리고,
급한 성질 못 버리고,
개차반씨는 누구보다 전력을 다해 동전에 몸을 날렸다.
여러 사람 밀쳐가며 기어이 오른발로 동전을 밟고
주변 놈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손을 휘둘렀다.
손에는 술병이 들려있었는데, 누가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애초에 생각이란 걸 할 위인도 못 됐고.
억
소리가 난 후에야,
자신이 친 사람 얼굴을 보았지.
그건 민형의 아버지‘였’다.
과거형을 쓸 수밖에 없는 게,
그 순간 맞은 민형의 아버지는 며칠을 골골거리다 죽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총포상이라 그런가.
그는 사람이 참 빨랐다.
그날
죽은 사람과 죽인 사람 아들 딸이 개떡을 나눠 먹은 줄도 모르고.
앞으로도 계속 개떡을 나눠 먹기로 약속한 줄도 모르고.
애석하게도 그가 죽인 사람은 민형 아버지뿐이 아니었다.
그는 동전 하나 줍겠다고 사람을 죽였고,
총기 팔겠다고 왜놈들 편에 서 조선 사람을 죽였으며,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친구고 가족이고 모가지를 날렸다.
탕.
그래서 고운도 그의 모가지를 날렸다.
총포상 딸이라 그런가, 고운은 타고난 명사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