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속삭임
산세가 험했다.
점심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에 사방은 금세 컴컴해졌고
고운은 대열에서 뒤처졌다.
멀리 보이던 동료의 뒷모습이 끝내 사라지고
이내 낙엽에 미끄러진 고운은
아래로 세 바퀴쯤 굴렀다.
얼마간 기절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머리에 드는 생각은 하나.
- 어디로 가야 하지?
이쪽 길일까. 저쪽 길일까.
하산하는 길이 헷갈렸지만, 동시에
독립운동 기지로 가는 게 맞나.
그냥 한양으로 가야 하나.
고운은 마음이 흔들렸다.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마음으로 무작정 발을 내딛는데,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비쳤다.
고운은, 만주에 온 이래 가장 큰 소리를 내었다.
- 여기요. 저 여기 있어요.
그건, 고운을 찾아 나선 민형의 등불이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아니, 성냥 하나 지급받지 못한 고운이 민형에게 업혀 기지에 돌아왔을 때
- 니들 제정신이야?
백탁이 고운을 따돌린 모두를 혼내고 있었다.
끙끙 앓는 고운의 신음에, 결국 그마저 소리를 낮췄지만.
그날 밤, 사경을 헤매던 고운은 많은 목소리를 들었다.
미안해.
잘못했어.
용서해 줘.
그중 가장 낮은 목소리로 이어지던 속삭임은,
- 아프지 마. 제발. 살아만 있어.
이건, 민형의 목소린데.
꿈인가. 싶은 순간, 고운의 입에 개떡 조각이 들어왔다.
역시 너구나.
단 한 사람. 나를
아는,
슬프게 한,
기쁘게 한,
싫게 만든,
좋아하는,
살리고 싶어 하는,
단 한 사람 너구나.
둘은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민형은 고운을 혼자 상해에 보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