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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편지

60. 탕

by juyeong

고운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포상의 딸, 명사수의 총알은 민형의 심장을 꿰뚫었다.

사방에 피가 흩어졌다.


백탁은 고운이 어려운 일을 겪었지만, 곧 마음을 추스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고운의 방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이미 떠난 뒤였다.


민형아.

우리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도 모자라,

나까지 너를 죽이는구나.

너는 어떻게 마지막까지 나를 보며 웃었니.

고운은 스스로가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날 이후 총구 너머 보이는 모든 얼굴이 민형으로 보였다.

다시는 총을 잡을 수 없었다.


고운이 경성, 민형의 집을 찾아간 건,

오로지 그의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죄송합니다.

말하려고 했는데. 말해야 했는데.

일본 놈들에 짓밟힌 경성은 지옥이 되어 있었고,

그들은, 고운의 얼굴을 마주할 여력이 없었다.

어릴 적 스친 고운을 알아보지도 못했지.

사는 게 버거워서.

쌀이 모자라서.

죽음이 목전이었다.


고운은 그들을 먼저 챙겼다.

쌀을 구했고, 학비를 도왔고,

왜놈의 행패를 막았다.


이제는 사과를 해야 하는데. 그리고 떠나야 하는데.

자신을 보고 웃는 얼굴들에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학교 담장을 뛰어넘어

쿠바리볼버를 쫓던 고운이 마주친 것은,


- 누구야 너.

- 고운아.


또다시 백탁이었다.

백탁은 품에서 작은 편지를 꺼냈다.

뭔데요. 라고 묻지도 못하는 고운의 마음을 읽은 듯,

혼자 술술 말을 이었다.


- 민형이 시신을 찾아서 정리하는데 나왔어.


고운아.

운이 좋다면 나는 네 손에 죽게 되겠지.

내 마지막이 너라면 나는 기쁠 거야.

너는 나의 영원한... 이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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