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고백
고운은 소공녀를 읽고 또 읽었다.
날이 어둑해진 뒤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기다리는 건
국수 그릇을 든 민우였다.
- 누나. 밥 안 먹었지?
민우는, 고운이 좋았다.
어느 날 나타나 형이 떠난 집의 구멍들을 메워준 고운이라면
제 말은 거짓말도 귀담아들어 주는 고운이라면
국수 가락이 손가락만치 불어 터졌어도 말없이 먹어주는 고운이라면
이 말도 안 되는 청까지 들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 누나. 새로 온 아저씨가, 누나 어디서 일하냐고 묻길래. 내가 모른다고 했어.
나는 누나가 저 아저씨랑 친하게 안 지냈으면 좋겠어.
왜?
묻는 대신, 고운은 민우를 쳐다보았다.
- 나는 누나가 우리 형이랑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형 돌아오면.
그 말에 고운의 마음이 내려앉았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민우야.
너는 내가 뭐라고 밥을 권하니.
너는 내가 뭐라고 재잘거리니.
너는 내가 뭐라고 졸졸 따르니.
- 나는 민형이하고 친하게 지낼 수 없어.
- 왜?
- 내가 죽였어. 민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