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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편지

7. 운수 좋은 날

by juyeong

이리 와요, 골라 봐, 이렇게 퍼주면 남는 거 없는데, 또 와요.

목소리 큰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시장 사람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실내가 어찌나 조용한지, 또르르 눈알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들의 바람은 하나였다.

나 말고, 누가 일곱 통의 편지를 잘 전달해 줬으면.


-제가 할게요.


무거운 침묵을 깨뜨린 건 관이였다. 모자라지만 착하고 재수 오지게 없는 관이. 쟤는 안 되지.

다들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제가 한다니까요.

힘주어 말하는 용기는 가상했으나, 비싼 독립을 허무하게 잃을 순 없었다.

아들을 붙잡은 승면이 말했다.


-나눠.


그렇게 일곱 통의 편지를 하나씩 나눠 가졌다.

인력거꾼 김씨가 첫 번째 날짜가 적힌 편지를 챙겼고,

가장 마지막 편지를 받은 민우는 이를 들고 있던 책가방에 넣었다.

집에 가 서랍 속 고이 모셔놓을 생각이었으나,

다음 날, 교실에서 가방을 열자 보이는 편지봉투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행운의 편지라 그런가.

모두 차렷! 갑작스러운 가방 검사는 민우 앞에서 뚝 끝났고,

너! 복도에서 민우를 붙잡은 호랑이 선생은, 인물이 훤하다는 칭찬만 남기고 가버렸다.


편지는 그렇게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지만,

종일 온탕과 냉탕을 오간 민우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

고개를 드니 날이 어둑했다.

교문을 나선 뒤 어디로 얼마나 걸은 건지 모르겠다.

길 양쪽으로 검은 기와지붕이 빼곡했다. 예전에 이쯤 어디 민우가 살았는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엄마와

껄껄껄 웃는 아빠와

쉼 없이 장난을 치던 민형,

그날의 행복은 그 집에 계속 남아있을까?


나라를 잃는 건,

전부를 잃는 것이었다.

그때


-거기 누구야.


언뜻 봐도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는지, 일본인 순사가 민우를 불러 세웠다.

운이 계속되길 바라며, 뒤를 돌았건만


-거기 지금 뒤돌아선 교복, 너.


젠장이다.

튀어.

다짜고짜 달리기 시작한 민우를, 순사가 순순히 보내줄 리 없었다.

온갖 쌍욕을 박으며 쫓아오는데


골목과 골목을 넘나들이하는 그때 문이 열렸다.

으리으리한 집에서, 감색 옷을 입은 하녀 아이가 이 밤에 청소 중이었는지 물동이를 들고 나왔다. 아니, 물동이가 애를 끌고 나왔나 싶게 키도 발도 볼품없이 작은 아이였다.


-편지요.


민우는 아이의 손에 행운의 편지를 쥐여주었다. 그리고 빠르게 달렸다. 발소리를 들은 순사가 민우를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계속해서 달리자.

아무도 쫓지 않을 곳으로, 잠든 해가 있는 곳으로, 형이 상해로 떠나지 않을 곳, 돌아가신 아버지가 기다릴 곳으로.


시간이 흐르고, 민우는 그날을 곱씹었다.

만약, 밤이 조금 밝았다면,

편지를 받은 아이가 빨리 고개를 들었다면,

아니, 내가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면,

알아챌 수 있었을 거라고


-숙희야. 인사해 이쪽은 내 동무 민형이, 얘는 민형이 동생 민우야.


그 아이는 일본에 공부하러 갔다는 경수 형의 여동생, 숙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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