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이백 원으로 편지를 샀다고?
누나, 그냥 편지가 아니라니까?
그럼 뭐 편지가 비범해?
어! 그게 어떤 종이로 만들어졌냐면, 예전에 한 도사님이 백두산을 넘는데 비가 쏟아졌대. 비를 피해 동굴로 가다 봇짐을 떨어뜨린 거야. 다음 날 찾으러 갔더니 짐이 나무에 걸려있더래. 그런데 이상해. 분명 처음 보는 나문데 눈에 너무 익는 거지. 아! 도사님 봇짐에 나무 그림 그려진 부채가 있었는데, 그게 하룻밤 새 진짜 나무가 된 거야.
…
그 귀한 나무를, 천도제를 지내 하늘의 허락을 받고 베어 만든 종이야. 그래서 편지에 특별한 향이 난다고.
어떤 냄새.
몰라. 나는 그냥 종이 냄새였어. 그런데 쿠바리볼버는 저어 멀리서도, 아무리 희미해도 그 편지 냄새를 맡고 수령인을 찾아가 죽인대.
걔는 뭐 개 코야?
그런 거 아니고 도사님 후손이라서. 엄청나지. 히로시를 죽여준다더니 정말 딱 죽여서 다음날 신문에 났다니까?
민우 얘길 들은 고운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날 오후, 백화점 식당에 남자 둘이 들어왔다. 무슨 음식을 파는지도 모르는 것이, 처음 온 게 분명했다. 어찌어찌 요리를 주문한 두 사람은 술 한잔 안 마셨건만 기대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보다 좋을 수 없어. 앞으로는 이런 날만 계속되겠지. 얼씨구절씨구 지화자였다.
잠시 후 접시를 가져온 여자는 상에 음식을 내려놓기는커녕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뭐지? 먹여주려는 건가? 백화점은 원래 이래?
그녀는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두 사람 앞에서 국수를 한 젓갈 먹었다.
-시장 국수보다 못하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남자들은 백화점 유니폼을 입은 여자 얼굴에 눈이 갔다. 퍽 고왔다.
한 번 놀아달라는 거야? 재밌게 해줄게. 어디로 갈까?
그런 것도 말이라고. 입을 함부로 더 놀리려던 순간, 두 남자 눈앞에 젓가락 끝이 보였다. 조금만 움직이면 눈알을 꿸 것 같았는데.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다시는 시장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마.
둘 줄 한 놈의 바지춤이 젖었다. 대충 알아들은 것 같자, 고운이 손을 내렸다. 남자들은 부리나케 달아났다.
민우 이야기를 들은 고운은 상황이 그려졌다.
히로시가 어떻게 죽은 건지 모르겠지만, 두 남자는 그 시신을 보았을 거다. 누군가 취재하는 것도 목격했겠지. 편지야 끼워 넣으면 그만.
그러니 다음 날 신문에 실릴 걸 알고 지들이 히로시를 죽일/죽인 것처럼 입을 털어 돈을 챙긴 거다. 독립을 빌미로 한탕 잡으려는 개새끼가 한둘이 아니었다.
-쿠바리볼버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넘어가다니.
고운은 한숨을 쉬었지만, 무려 이백 원을 모은 사람들 간절함을 모르지 않았다. 허나 다시는 독립에 엮이고 싶지 않았고. 독립은 사람을 죽였다.
고운은 죽음이 지겨웠고, 더 이상 싸울 능력도 없었다. 총을 못 쏘는 총잡이가 무슨 소용이람.
고운은 식당을 나와 육층으로 올라갔다. 저의 일터, 캄캄한 상자가 거기 있었다. 상품권 판매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