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패맨 May 10. 2024

이노우에 나오야 5

챔피언의 멘탈

충격적인 다운
사진 출처 : Kyodo News

 다운을 허용한 나오야를 본 순간, 번쩍할 정도의 충격에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복서가 다운을 당하고 패배를 하는 거야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프로데뷔 후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단 한 번도 다운을 허용하지 않은 "그" 이노우에 나오야가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다운을 빼았겼으니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마음속 영웅이, 내 마음속 히어로가 쓰러지는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충격이었다. 

 다운의 이유는 이러하다. 오소독스(오른손잡이 복서)와 사우스포(왼손잡이 복서)가 시합을 하게 되면 신체 구조상 서로의 앞발을 부딪히거나 밟게 되고 그러면서 이 앞발을 누가 유리한 위치에 놓는가 하는 싸움이 벌어지는데, 이는 자신의 앞발을 상대방의 앞발 바깥쪽으로 위치시켰을 때 보다 안정적인 타격각을 잡을 수 있음은 물론, 스탠스의 안정성, 에도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나오야는 근접에서 네리에게 앞발을 먹힌 상태로 왼손 어퍼를 들어갔기에 일단 위치상 불리했으며, 이런 초근접 상황에서 오른손 가드를 턱 밑으로 내려놓는 과오를 범했기에(사실 과오라기 보다도 나오야가 네리의 스타일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네리의 왼손훅을 허용하며 다운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오야가 다운될 때의 자세를 보면 얼굴에 주먹에 맞은 뒤 중심을 크게 잃으며 휙 하고 돌아서 멋없게 철퍼덕하고 넘어지는데, 이는 나오야가 날아올 네리의 주먹에 대비해 뒤늦게 날린 오른손 훅의 가속으로 인함은 물론, 낙법 하기 위해 팔을 뻗었음에 있다. 즉 볼품없이 넘어졌지만 다행히 무릎 힘이 풀려 주저앉을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오야가 월장을 해서인지 아니면 스타일을 바꿔서인지, 가장 눈에 띄는 강점 중 하나였던 인 앤 아웃 스타일을 버린 것이 그가 다운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감이 좋은 나오야라고 해도 스탭이 줄어드니 근접에서 주먹을 허용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나오야가 맘먹고 스탭을 쓰는 스파링 영상을 보면 발에 스프링을 달고 날라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만큼 그가 스탭으로 치고 빠지면 중장거리에서 거진 상대를 샌드백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기에 그의 팬 중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나오야의 인 앤 아웃 스타일을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은 퍽이나 슬픈 일이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멘탈(undisputed mental)
사진 출처 : Max Boxing

 이노우에 나오야가 소속된 오하시짐의 오하시 회장은 나오야의 가장 큰 장점을 멘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급박한 링 위에서의 상황판단력과 지능적 플레이는 물론, 경기에서 겪게 되는 두려움, 자신감, 혼란함, 흥분감과 같은 수 가지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뛰어남을 의미한다. 이번 경기에서 나오야는 이를 명확히 보여줬다.

 예상컨대 많은 복싱 팬들이 나오야의 다운을 보고 충격을 먹었지만, 정작 가장 충격이 큰 사람은 나오야 본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이라 함은 충분히 자뻑하고 콧대를 세워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자인데, 무려 두 체급에서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인 나오야이기에 그 스스로도 다운을 당하면서 상당히 굴욕적이고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겼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일어나 심판과 눈을 마주친 뒤, 방어에 전념하며 위기 상황을 피해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리어 네리에게 카운터를 먹이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비록 다운당했을지언정, 나오야의 멘탈이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1라운드였다.

 이어지는 2라운드, 나오야는 네리의 레프트 훅을 파악한 듯 보였고 이내 그의 주 무기이자 주카운터 기술인 레프트 훅으로 치고 들어오는 네리의 안면을 강타하여 다운을 빼앗았다. 무려 다운을 당한 직후 라운드에 똑같이 갚아준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4라운드, 나오야는 얼굴을 쳐보라는 식의 쇼맨쉽까지 보여주며 이제 네리를 확실히 파악했음을 선포하였고 자신감의 썩소를 짓기 시작했다. 5라운드, 나오야의 레프트훅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주로 두 경우다. 첫 번째로 2라운드와 같이 들어오는 상대를 보고 받아치는 순간, 두 번째로 (짧은 미래가 보이기라도 하는 것인지)근접전에서 상대가 뒷손가드를 내리는 아주 짧은 타이밍을 정확히 파악하고 예측샷을 날리는 순간이다. 욕심쟁이 네리는 전자의 경우는 물론, 후자의 경우 역시 체험해보고 싶었던 것인지 근접에서 나오야의 레프트를 정확히 맞으며 다시 한번 다운된다. 6라운드, 네리가 나오야의 주먹을 허용하는 경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누적된 대미지를 견뎌내며 코너에 밀린 네리가 레프트를 휘두르는 짧은 순간, 나오야는 비어있는 네리의 안면을 정확히 주시하고 라이트를 꼽아 넣었다. 네리는 순간적으로 전원이 꺼진 듯이 온몸을 흐물거리며 종이인형처럼 쓰러졌다. 명확하고 정확한 Knock Out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둘기마요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