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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나오야 9

끊임없이 성장하는 나오야

by 연패맨


나오야는 나오야였다
나오야 무로존.png

타팔레스, 네리, 도헤니, 김예준에 이어 이번 상대인 무로존까지. 나오야는 제법 많은 사우스포들과의 경기를 치렀으며, 그만큼 세계의 정상에는 사우스포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들이었다. 사우스포 네리의 레프트훅, 라몬의 레프트훅(라몬은 오소독스지만 나오야를 다운시킬 때를 보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반대방향으로 가면서 훅을 쳤기 때문에 네리와의 다운 상황과 흡사했다)에 다운을 당했던 나오야는 무로존이라는 강력한 사우스포(무로존은 나오야보다 덩치가 컸으며 예상대로 맷집이 훌륭한 인파이터였다)에 맞서 눈에 띌 정도로 중심을 낮추고 하이가드를 바짝 올리고 턱은 바짝 당긴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인파이팅을 제법 보여주었던 전 경기들과 다르게 나오야는 본인이 가장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하는 중장거리를 계속해서 유지하여 움직였다. 즉 나오야는 그만큼 이번 경기에서 스텝을 많이 밟았다. 아마 복서의 콩콩이 스텝을 계속 밟았다기 보다도 중장거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아웃복싱 느낌의 백스텝 및 빙빙 도는 알리스텝 등을 부지런히 밟았다(후에 10라운드, 12라운드에 가서는 정말 콩콩이스텝을 밟으며 스텝으로 페인팅을 주는 등 엄청난 자신감과 체력을 보여주었다).


중후반 라운드부터는 나오야가 중앙을 잡으며 무로존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잽이나 원투 같은 중장거리 기술만을 사용하던 나오야가 6라운드부터는 시그니처 기술인 레프트 바디를 근거리에서 3 연타로 쏟아내는가 하면, 원투 레프트 바디를 과감히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나오야가 거리싸움 및 경기 지배에 대한 확신이 섰기 때문은 물론, 전략상 중후반라운드에 레프트 바디를 쓰기 위한 빌드업이 아니었나 싶다. 후반라운드에 가서 무너질 줄 알았던 무로존은 12라운드 끝까지 나오야의 주먹을 버텨내며 판정까지 가져갔다(승리는 당연히 경기를 압도한 나오야였다). 그는 나오야의 주먹을 허용하면서도 양손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할 정도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강인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에 질세라 나오야 역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사실상 스텝을 밟으며 끝까지 중장거리에서 재미를 볼 수 있음에도 나오야는 리스크를 무릅쓰고 인파이팅을 선호한다.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복싱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스타성 있는 복서이다.





나오야의 디펜스와 잽
나오야 무로존2.png 스웨이백(레이백)으로 훅을 피하는 나오야의 모습

다수의 사람들이 육각형 복서인 나오야의 유일한 단점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상체 움직임의 부족인데, 개인적으로는 나오야의 상체 움직임이 부족하다기보다 스텝이 워낙 좋다 보니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하며, 월장을 하게 되면서 스텝이 줄고 이제야 상체 움직임을 더 많이 보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이번 경기에서 전반 라운드만 해도 나오야는 상체 무빙이나 페인트를 굉장히 많이 사용했다.

나오야에게는 메이웨더의 미꾸라지 같은 필리쉘가드 숄더롤이나 카넬로 같은 헤드 무브먼트는 없더라도 그만이 가진 정점의 회피 기술이 있으니 바로 상대의 주먹이 닿는 거리에 있다가 순간적으로 허리를 빼서 피하는 스웨이백(레이백)이다. 필자가 본 바로 나오야는 스웨이백으로 상대의 훅성 공격을 99.99%에 피해낸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 [원피스]의 견문색 패기가 실존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다.

스웨이백만큼이나 이번 경기에서 나오야는 하이가드와 스텝을 이용한 훌륭한 방어능력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무로존의 연타가 들어올 경우 하이가드를 바짝 올리고 뒤로 빠지며 한두 대 정도를 막아낸 뒤 다음 공격은 백스텝으로 가볍게 흘려버렸다. 이는 나오야가 상대의 주먹을 확실히 보면서 제법 예측가능한 회피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 이번 경기를 보며 나오야를 통해 확실히 배웠던 것 중 하나는 상대의 공격을 허용한 후에는, 상대가 잡아놓은 타격 거리를 흐트러트리거나 다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항상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오야는 중장거리를 굉장히 잘 살리는 복서인데, 그 첫 번째 이유는 당연히 스텝에 있으며 다음으로는 그의 잽에 있다. '왼손이 세계를 제패한다'는 말처럼 필자는 나오야가 잽 싸움에서 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자신보다 신체적으로 유리한 아웃복서 풀턴을 상대로도 잽싸움에서 압도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이번 경기 역시 나오야는 상당히 많은 잽을 던졌다. 놀라운 점은 나오야의 잽 대부분이 견제 및 거리조절이 아니라 타격을 입히기 위한 강력한 잽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빠르기 까지 하며, 잽을 칠 때 뒷손가드가 얼굴에서 내려가지 않고(그만큼 이번 경기에서 가드에 신경을 많이 썼다) 회수 및 중심 잡기까지의 마무리 동작이 깔끔하다 보니, 상대입장에서 나오야가 던지는 잽을 뚫고 들어가기도 어려우며 잽에 대응해 카운터를 맞추기도 굉장히 까다로워 결국 속수무책으로 나오야에게 가장 유리한 중장거리를 허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오야의 원투
fight1a-0914-e1757873936742.jpg 사진 출처 : JAPAN Forward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필자가 계속해서 원투에 신경을 쓰다 보니 그런지 모르겠으나, 이번 경기 역시 나오야는 원투를 정말 많이 던졌다. 그리고 언제나 원투가 공격의 시발점이자 핵심이었다.

초반 라운드의 경우 원투 베이스의 레벨체인지 공격인 위아래(훅)를 많이 보여주었고, 중반 라운드에 가서는 확실히 공격적으로 들어가며 원투를 많이 날렸다.

필자가 [원투 : 필수불가결 3요소]라는 글에서 언급했듯이, 원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타이밍을 잘 잡아 앞발을 상대의 앞발 옆으로 확실히 넣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원'인 잽을 치러 들어가는 박자가 상대방이 알지 못하게끔 빠르고 타이밍이 좋아야 하며, 뒷손을 명중시킬 수 있도록 앞발이 상대 앞발 바로 옆까지 쑥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나오야가 이것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 그가 앞손을 치며 들어가는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보면 마치 육상선수가 스타터 발판을 밟고 뛰쳐나가듯 상대를 향해 날아들어간다. 오소독스가 사우스포를 상대로 앞발을 집어넣을 때는 앞발의 경로가 겹치기 때문에 꽤 어려움에도, 나오야는 항상 앞발을 번쩍 들어 날아들어가 무로존에게 성공적인 '원'을 날릴 수 있었다.

이후 '투'인 스트레이트를 날릴 때는 뒷발 회전과 허리회전을 주며 확실히 체중을 실은 펀치를 보여주었다. 원투뿐만 아니라 카운터 스트레이트를 날릴 때도 마치 교과서처럼 중심을 잘 잡은 상태에서 뒷발을 돌리며 정석적인 스트레이트를 보여주는 나오야였다.

fights-uzbekistans-murodjon-akhmadaliev-super-1023319211_ae7a32.jpg?strip=all&w=960 사진 출처 : talkSPORT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디온테이 와일더처럼 준토나 나오야 역시 원투에서 '투'를 칠 때 뒷발이 들리며 상체가 앞으로 쏠릴 정도로 체중을 실어서 친다는 점이었다. 이는 정석적인 원투와 상당히 거리가 먼 움직임이다. 중심을 앞으로 쏠려 친다는 것은 체중이 실린 만큼 펀치가 강할 순 있으나, 그만큼 다음 동작이 어려워지고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복싱을 할 때 중심이 앞뒤로 쏠리지 않고 항상 가운데 있어야 하는 이유는 복싱은 단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연타가 있기 때문이며, 다음 동작을 위해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함에 있다. 그러나 나오야는 (물론 모든 경우 그런 것은 아니다) 원투를 칠 때 중심이 꽤나 앞으로 쏠려 치지만 상대로부터 카운터를 거진 맞지 않으며 연타로 이어지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투'를 날리며 뒷발이 앞으로 옮겨진 스위치 상황에서 그 반발력으로 그대로 레프트를 날리는 등 공격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나오야의 원투가 너무 간결하고 완벽해 당장에 방어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가드로 막은 후 공격하려고 해도 이미 나오야는 빠르게 원래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가 있으니 대처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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