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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패맨 Nov 24. 2024

이성과 감성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


이성과 감성
이성을 외면의 활동인 해, 감성을 내면의 활동인 달로 비유해 본다 / 사진 출처 : Depositphotos

 인간에게는 동물에게 없는 이성과 감성이 공존한다. 재밌는 점은 인간이 이 두 가지 성질로 인해 만물의 영장이자 먹이사슬의 지배자로 위치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이 두 가지 성질로 인해 끊임없이 싸우고 부딪히며 서로를 혐오하고 파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이성이나 감성 중 어느 한쪽만이 존재했다면 인간은 분명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없었을뿐더러, 서로 피터지도록 싸우는 일도 지금처럼 발전한 문명을 소유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성'이란 쉽게 말해 '사유하는 능력'이다. 사물이나 상황의 이치와 원리를 알아내는 힘이자,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 옳고 그름을 냉정한 판단으로 가릴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이 있기에 인간은 "왜?"라는 물음을 통해 거대한 발톱과 이빨을 가진 동물을 손쉽게 제압하고 원하는 환경과 사회를 건축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달에 인간을 보내고 AI기술까지 창조하였다. 또 지난 역사 동안 일어난 무수한 사건, 사고, 전쟁, 심판 등에 대해 진위성과 당위성을 따져가며 인류가 퇴보와 실패 속에서 영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성이란 인간을 실리적이고 슬기로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치트키와도 같은 것이다.


 반면 '감성'이란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이자 인식능력'이다. 사유가 아닌 느끼는 능력인 만큼, 어떤 자극에 대해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감성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감성과 감정의 차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감성과 감정이란 단어는 각종 매체에 그 쓰임새가 굉장히 유사하게 보여 언뜻 같아 보이지만, 비슷할 뿐 다른 개념이다.
 감정이란 감성에 자극을 받아 일어난 화학적 반응이다. 즉, 감성이 먼저 있고 그러므로 감정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영단어로 보면 그 이해가 훨씬 쉬워진다. 감성은 sensibility, 감정은 emotion이다. 감성은 느낌이고, 감정은 표현에 가깝다. 감성은 동일한 대상에 대해 개인마다 그 차이가 생길 수 있고 굉장히 주관적인 반면, 감정은 동일한 대상에 대해 다수가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공통성이 있다. 따라서 감성은 명확한 표현이 존재하지 않지만, 감정은 기쁘다 화나다 슬프다 등 자신이 느낀 바를 표현할 수 있는 명확함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감성이 나 자신을 향하고 있다면, 감정은 상대방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감성은 오롯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고, 감정은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표현에 가깝다.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감성이 있기에 인간은 단순 욕구에 그치지 않고 손해를 보면서까지 낳은 자식을 기르고 생명체를 보호했으며,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생하며 때론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써 이성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목숨을 건 자기희생을 하기도 했다. 또한 사랑 정의 의리 충성심 도덕 같은 추상적인 것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대의를 위하기도 했으며, 마찬가지로 사랑 철학 관념 종교 이데올로기 같은 추상적인 것으로 인해 타인을 죽이고 미워했다. 한마디로 감성이란 인간 삶의 존재 이유이자 세상사 모든 문제의 원인이며, 인간이 내리는 모든 선택의 근본적인 원인과 같다.                  






이성과 감성의 중용
F는 감성, T는 이성에 가깝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고상한 생활일기
 "의학, 법, 비즈니스, 기술, 이런 것들도 숭고한 일이야. 그리고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들은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들이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왔던 이 대사를 이성과 감성에 접목하여 생각해 보자. 이성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면, 감성은 삶을 영위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개념은 분명 상반되고 대응되는 개념이지만 우리에게 모두 필요하기에, 어느 한쪽에 치우치게 되면 결국 부정적이거나 불편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인간은 이성보다 감성에 치우쳐 사고하는 경우가 잦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①축구선수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는 유벤투스 시절 한국에서 치러진 친선 경기에서 노쇼 사태를 일으키며 한국인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고 우리형에서 노쇼두로 팬덤이 급격히 실추되었다. 그러나 그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노력형 천재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없는 사실임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노쇼사태로 인해 축구선수로서의 그의 실력과 자격까지 폄하하게 되었다.

 ②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조선을 36년간 식민지배 통치하며 우리 민족에게 온갖 악행들을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역사왜곡 및 독도문제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직까지 불편한 감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인들은 일본의 제품과 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그들의 매체를 다양하게 소비하고 즐김과 동시에, 불매운동을 하거나 반일감정을 표현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위의 예시들처럼 우리는 감성에 매몰되어 이성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부분까지 폄하하는 경향이 잦으며, 이러한 갈등은 작게는 호불호에서 크게는 사회문제나 정치, 이념갈등 등 다양한 문제로 번지곤 한다. 물론 반대로 조금의 감성이 없이 너무 이성적으로 행동해 인간적으로 질타를 받는 경우, 이성과 감성 중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지 굉장히 애매한 상황들도 있을 것이다. 결국 어떤 문제가 되었든 우리가 인생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딜레마들을 지혜롭게 다루기 위해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과 감성을 적절히 절충시켜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성을 일관성 있게 가져가되 최소 인간적 부분에서 이성과 감성의 줄타기를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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