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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기

히어로.

by stay gold



마흔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술기운을 빌어 아버지께 고백했다.


쉽지 않았을 세상에서 우리 형제가 잘 지낼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이 없으셔서 오해도 많이 했었지만 나이 들어 보니 아버지가 해주신 것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의 대가였는지 알겠다고.

이제는 너무 잘 알겠다고. 감사의 이야기 끝에, 아들 둘을 둔 네 가족의 가장으로서의 삶이 두렵지 않으셨나 여쭤봤다.


“때로는 막막했고, 항상 두려웠다.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이제는 아들 앞에서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내비치기도 하시는 아버지는 술기운을 빌어 전에 없이 솔직한 말씀을 하셨다. 우리에게는 초인(超人)이어야만 했던 아버지의 고백에 한참 동안 눈시울이 붉어졌던 저녁이었다.


그 저녁으로부터 몇 개월 뒤 아버지는 쓰러지셨다.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진심을 담은 감사를 전력을 다해 전했던 그날 저녁의 시간들이 그나마 한가닥의 위안이었다.


다행히 우려했던 상태는 아니셨고, 오래 복용하셔야 할 테지만 약으로 충분히 관리가 가능한 상태셨으며, 퇴원 이후 잘 지내고 계시는 아버지. 이제는 뵐 때마다, 지겨우니 그만하라고 하실 때까지 감사를 전해야겠다. 들어주실 수 있으실 때, 전력을 다해 전해야겠다.


학창 시절, 특히 반항기 가득했던 고등학교 때를 다시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히어로였고 내가 빌런이었다. 그때는 내가 히어로인 줄 알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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