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가해자의 망각

기억나지 않는 잘못

by stay gold



가해자의 망각에 대해 알고 있다.


언젠가 초등학교 동창회. 학교 가는 길목에 집이 있던 친구라 등교길에 종종 함께 해 제법 친한 편이라 생각했던, 별다른 일 없었던 친구가 별다를 것 없는 말투로 말해준 내용. 내가 그 친구를 무자비하게 때렸단다. 그것도 그 친구 동생이 보는 앞에서.


폭력이 용인되던 학창 시절. 싸울 일이 있을 땐 피하지 않는 성질 탓에 매년 한두 번 이상 싸움을 하기도 했고, 고얀 성미가 있어 두고두고 후회하는 행동들을 하기도 했지만, 그 친구와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때문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당사자는 물론 지켜본 동생도 기억하고 있다니 내가 한 짓이 맞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여 내가 한 짓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유 불문 그때의 나를 분명히 혼내고 싶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노릇.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최대한의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동생에게도 사과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웃어넘기던 친구.


친구의 동생은 이후로 계속 나를 싫어했지만, 우리는 그 사건 이후로 잘 지냈단다. 듣고 보니, 친구의 동생이 나를 꺼리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그랬구나.


아직도 그 사건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미안해서 어떻게든 기억해 내고 싶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지 못하는 잘못.

살아오며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기억나지 않는 잘못이야말로 가장 큰 잘못일 것. 잘못을 저지른 것에 더하여, 이를 잊는 잘못까지 저질렀으니 가장 악행에 속할 것이다. 잊었으니 없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잊음의 잘못까지 더하여 사죄할 일이다.


그때 그 시절을 말하며 우리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것도, 가해 또한 피해의 결과라 합리화할 것도 아니다. 결국 행위한 것은 나 자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행위를 한 나의 잘못이다. 잊은 것은 더 큰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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