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와 가해
기본적으로 전장연의 시위에 동의한다.
우리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고, 집회와 시위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집회, 시위의 자유는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특별히, 전장연의 게릴라 시위는 반대한다. 기본적으로 전장연의 시위에 동의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유로, 출근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수많은 직장인들과 학생들의 불편을 주장 관철의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정당방위나 자력구제가 용인될 수 있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기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목에 칼이 들어왔을 때 방어 차원에서의 공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우리의 배가 고프다고 모두가 이용하는 무료 급식소를 점거하는 방식은 반대. 동기는 이해하나, 행동이 정당하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편, 전장연의 게릴라 시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여 곧 장애인의 처우 향상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이상하다.
이제는 고루하게 느껴져 사용을 피하고 싶지만, ‘양비론’이라는 단어에 들어맞는 태도로 보는 쪽.
‘정의’로 포장한 가해가 가장 치명적이다.
사상, 이해관계, 종교, 강약, 인종,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든, 어떤 집단이든 정의를 앞세워 가해할 수 있다.
덧붙이면, 전장연에서 예고한 시위 및 집회를 하는 것에는 이의 없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정도의 불편을 겪는 것은, 우리 사회의 형평성을 위해 마땅히 내야 할 세금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도 충분히 이해한다.
원래 남의 손 골절된 것보다 내 손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것 아니던가. 볼멘소리 하지 말라며 핀잔하는 이들도 이 쟁점이 아닌 다른 쟁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을 것. 뭐, 우리 사회에서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하는 특별히 훌륭한 분들이라면 모를까, 나머지는 대동소이할 것. 이건 쟁점에 대한 이해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문제로 보인다.
출근길 시민들의 일상을 담보로, 집단의 권리 확보를 위해 다른 집단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릴라성 시위에는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