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집안일을 잘 도와준다. 아니 도와준다기보다 남녀 일의 구분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 집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한다. 남편의 퇴근이 나보다 늦으니 음식 준비는 거의 내가 하지만 같이 밥을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침에 여자는 머리, 화장 등 준비할 게 많으니 간단한 아침도 준비해준다. 주말 아침은 당연히 남편이 차려주는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를 우아하게 먹는다. 토스트, 베이컨, 달걀프라이, 샐러드, 수프까지 아주 제대로 차린다. 가끔 출장 갈 때는 아들과 내가 먹을 수 있게 주말에 미리 카레나 동그랑땡 같은 것도 해놓는다. 쓰레기 버리기, 분리수거, 빨래 널기 등은 얘기할 거리도 안 된다. 아이와도 늘 최선을 다해 놀아준다. 새벽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는 바쁜 회사에 다니던 몇 년을 제외하고는 늘 그래 왔다. 이런 일상을 당연히 여기다가도 아내를 돕지 않는 남자들 얘기를 들으면 새삼 고맙고 착한 사람과 살게 되어 감사하다.
이런 천사 같은 남편이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설거지다.
나의 설거지에는 철학이 있다. ㅋㅋㅋ
식사 후, 일단 냅킨으로 접시의 큼지막한 음식 찌꺼기를 닦아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새것을 쓰지 않는 것이다. 입 닦은 냅킨이나 물기만 닦아 깨끗한 휴지를 재활용한다. 다음으로 뜨거운 물을 쫄쫄쫄 틀어놓고 기름때나 나머지 음식물을 1차 씻어낸다. 여기서는 쫄쫄쫄이 중요하다. 이때는 많은 물이 필요 없다. 그 정도만 틀어도 기름기가 어느 정도 제거된다. 이렇게 미리 음식물과 기름기를 씻어내면 세제 사용도 줄일 수 있다. 이때 쌀뜨물이 있으면 중간 과정이 한 번 더 추가된다. 쌀뜨물은 기름기 제거에 탁월해서 심하지 않을 경우, 쌀뜨물만으로도 기름기가 훌륭하게 제거된다. 그런 후 거름망은 옆에 빼두고 설거지하는 동안 음식물 쓰레기의 물기를 뺀다. 사료나 퇴비로 재활용된다고 하니 가능하면 음식물에 세제를 묻히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적당량의 세제를 사용해 깨끗이 닦아내고 따뜻한 물로 헹군다. 헹굴 때도 옆으로 물이 마구 튈 만큼 수돗물을 세게 틀지 않는다. 중간 정도의 수압을 이용하고 헹구는 동안 손으로 박박 문지른다. 물로만 세제를 제거하려면 물이 더 많이 든다. 이제 건조대에 올려서 자연 건조시킨다.
남편은 사전 작업 없이 그냥 싱크대에 그릇을 마구 몰아넣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게 물을 틀어놓고 하나 비누칠하고 하나 헹구고, 또 하나 비누칠하고 하나 헹구고 이런 식이다. 그러니 계속 세제를 펌핑한다. 거름망은 음식물과 세제 범벅이고 헹굼도 손으로 박박 문지르지 않고 물로만 슬슬 헹군다. 보고 있으면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나는 남편의 설거지가 너~~ 무 견디기 힘들다.
그렇게 하면 물 낭비가 너무 심하다고 잔소리도 해보고 싸우기도 해 봤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우리 아들이 살아갈 세상에 깨끗한 지구를 물려줘야 하지 않겠냐며 어르고 달래기도 해 봤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더 얘기하다가는 설거지 때문에 이혼할 것 같아서 그만뒀다. 그렇다고 내가 다 하겠으니 당신은 빠지라고도 못 하겠다. 그러다 삐쳐서 다른 것도 안 해주면 나만 재앙이다.
“쏴~~~ 쏴~~~” 부엌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소리, 그릇 딸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콧노래가 들려온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엉덩이까지 씰룩거린다. 참 평화로운 휴일 아침이다.
남편만...
나는 소파에 앉아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운다.
‘설거지보다 남편이 더 중요하다~~ 중요하다~~, 나는 관대하다~~ 관대하다~~’ 거의 수련의 경지다.
그러나 나도 변하지 않는다.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을 때마다 쌀 씻는 양재기를 얄미운 남편 뒤통수에 정통으로 날려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