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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투 Sep 28. 2021

어쩌다 결혼

나는 엄마가 무척 반대하는 연애를 했다. 이유는 단 하나 궁합이 안 맞아서, 그것도 그냥 안 맞는 게 아니라 상극이라나. 연애하는 2년 내내 집에서 모진 수모를 당하고 남편은 드라마에서처럼 엄마에게 몇 번씩 불려 나갔다. 재벌 집이 아니라 돈 봉투도 없었고 물세례도 없었지만 “우리 영희는 엄청난 부잣집에서 데려간다고 줄 서 있으니 너는 포기해라” 뭐 이런 맥락의 아무도 안 믿을 뻥을 치셨다.



그러니 연애의 길이 험난할 수밖에 없었는데 만남은 물론 전화 통화조차도 마음 편히 못했다. 전에는 안방에 전화기가 있으면 작은방에서 한 대 더 연결해 쓸 수 있었다. 그걸 ‘쁘락지‘라고 불렀던 거 같은데, 문제는 내 통화내용을 저쪽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거다. 전화벨이 울리다 내 방에서 받으면 엄마는 안방에서 전화기를 들고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통화하다 말고 붙들려 나가 마당에서 빗자루로 얻어맞은 적도 있다.



그러다 전화 소리가 안 울리게 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1단계. 내가 통화 가능한 시간에 남편에게 삐삐를 친다.(거의 엄마가 잠든 후)

         (그나마 삐삐라도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니면 편지를 주고받을 뻔했다)

2단계. 삐삐 친 그 순간부터 나는 전화기의 훅 스위치를 계속 눌렀다 뗐다 반복한다.

         *훅 스위치 : 수화기를 들면 통화 상태로, 수화기를 놓으면 대기 상태로 전환하는 스위치.

3단계. 남편도 삐삐를 받자마자 계속 전화를 건다.

4단계. 소리 나지 않고 전화가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



짧으면 금방 연결되지만 길면 몇 십분 동안 이 짓을 해야 했다. 내가 걸면 간단한데 그럼 전화비가 많이 나와 엄마에게 바로 들키고 벼락이 떨어진다. 나중엔 이 방법도 들통나서 내방의 전화선을 끊어 버렸다. 궁하면 통한다고, 보다 못한 오빠가 끊어진 전화선의 양 끝 외피를 벗겨주고 동생은 드러난 구리 선을 두 손으로 맞대고 내가 통화하는 내내 옆에서 들고 있었다. 동생은 또 뭔 고생인가, 무슨 세기말의 사랑도 아니고 참... 그때의 공로로 동생은 아직도 남편에게 국빈급으로 대접받는다.



그런데 그렇게 반대하던 엄마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졌다. 몸 왼쪽에 마비가 왔는데 평소에도 몸이 약한 엄마는 덜컥 겁이 났나 보다. 갑자기 자식들 시집 장가 하나 못 보내고 죽으면 큰일이다 싶었는지, 일단 남자 친구 있는 나를 해치우고자 마음먹었다. 엄마 언제 죽을지 모르니 그렇게 좋으면 엄마 죽기 전에 결혼하라는 거다. 갑자기 연애 결사반대에서 급 결혼이 추진됐다. 남편도 할머니께서 본인 돌아가시기 전에 장손 장가보내는 게 소원이시라 진작부터 결혼하라는 압력을 받아왔다. 그렇게 두 분이 의기투합해 결혼이 일사천리도 진행됐다. 좋아서 연애는 했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인생 참 알 수 없다. 너무 반대하다 갑자기 결혼하라니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그분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엄마의 선심에 나는 뭔가 감지덕지한 분위기? 그때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남편을 편하게 만나기 위해 결혼하는 정도의 개념밖엔 없었던 것 같다. 결혼해서는 남편이 워낙 착하고 성실하니 좋은 날만 계속됐다. 시댁 어른들도 점잖은 분들 이어서 시집살이 같은 건 일도 없었다. 오히려 어른들이 나를 어려워하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의 주가는 결혼 후 급상승했다. 그전까지는 약간 선머슴 같은 데가 있었는데, 결혼 후 여성스러운 면이 조금씩 드러났는지, 어딜 가도 남자들이 들이댔다. 술집, 도서관, 각종 모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내가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남자들이 대시하고, CEO 과정을 운영할 때는 회장님들이 회사에 아끼는 인재를 소개해주겠다, 본인의 아들을 소개해주겠다, 말 그대로 줄을 섰다.



아뿔싸!!



내가 너무 심하게 현실감각 없이 순진했던 걸까? 중풍으로 쓰러지셨던 엄마는 초기에 치료를 잘 받아서인지 지금은 다른 데는 다 아파도 중풍은 기미도 보이지 않고, 살아생전 손주 장가보내는 게 소원이셨던 시할머니는 100세를 훌쩍 넘기시며(정확히 104세) 증손주도 보셨다. 흠.. 어쩐지 두 분께 당한 것 같다. 결혼을 너무 아무 생각 없이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때 안 했으면 아직 못했을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은 상처투성이인 나를 온전히 받아주고 사랑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전보다 여유 있고 부드러워진 데는 남편의 조건 없는 사랑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성실하고 가정적이어서 지금의 삶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하지만 한 번씩 결혼생활에 2% 부족함을 느낄 때면,

내가 놓친 엄청난 기회들이 생각난다.ㅋㅋㅋ

그래도 다시 허벅지를 찔러가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놈이 그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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