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금요일 마음이 설렌다. 저녁에 술 약속이 있는데 요즘 내가 유일하게 기다리는 모임이다. 오늘의 메뉴는 농어회, 술은 소주, 하이볼, 써머스비 다양하게 되시겠다. 생각만 해도 벌써 침이 고인다. 나는 워낙 술에 약한데 오늘 모임은 억지로 먹이는 사람도 없고 편하게 나 먹고 싶은 만큼만 먹고 원하는 걸 마시면 된다. 집에서 마시니 먹고 퍼져도 염려 없고 무엇보다 이런저런 얘기로 웃음꽃이 핀다. 내가 이렇게 편하고 재미있게 형제들과 모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영화 '소나티네'로 유명한 일본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을 두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누가 보고 있지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
나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오빠는 너무 착하다. 사람이 속없이 너무 좋기만 해서 남의 말에 속기도 잘하고 사기도 잘 당한다. 계산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밥도 잘 사고 술도 잘 산다. 누가 꼬이면 사업한다고 말아먹고, 부동산 투자하라고 부추기면 집을 몇 채씩 사서 나중에 대출금 이자 갚느라 허덕이고,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면 엄마가 해결해주는 식이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나도 몇 번 도와준 적이 있다. 어려서 집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자랐는데 제 몫을 못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비빌 언덕은 없고, 온 가족이 다 짐처럼 느껴졌다.
요즘은 오빠만큼 고마운 사람이 없다. 워낙 착해서 형제끼리 만나면 항상 오빠가 먼저 베푼다. 밥을 먹어도 따지고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오빠가 돈을 내려한다. 물론 동생과 내가 그렇게 두진 않지만, 오빠가 먼저 나서고 내가 말리고 동생이 정리하는 이런 형국이다. 특히 조카인 둥이를 너무 예뻐해서 둥이에겐 ‘무조건’이다. 전에는 아빠가 둥이의 1순위였지만 삼촌에게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누구와의 비교도 불허한다.
일단 둥이가 출동하면 먹을 건 말할 것도 없고 둥이가 원하는 건 다 해준다. TV, 게임, 만화책 엄마 눈치 보며 못했던 것들을 삼촌만 만나면 다 할 수 있다.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제일 비싼 선물은 다 삼촌 몫이고 때마다 철마다 데리고 나가 옷이며 운동화며 엄마는 비싸서 못 사주는 것들을 척척 사 입힌다. 만나지 않을 때는 수시로 전화해서 먹고 싶은 거 삼촌이 다 시켜 줄 테니 마음껏 먹으라고 부추긴다. 나야 필요 없는 걸 사느라 애한테 푼수 없이 돈을 막 쓴다고 핀잔 주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조카가 둘이냐 셋이냐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
나는 아들이 버릇 나빠질까 봐, 감사함을 모를까 봐 조심했던 것들을 삼촌이 대신해주니 아이도 한 번씩 숨통이 트일 것 같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린 시절 자신을 향한 이런 무조건 적인 사랑을 경험한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다. 무조건 내편인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어떤 빽 보다 큰 힘이다.
생각해보면 오빠는 어려서도 천사였다. 워낙 똘똘해서 초등학생 때 이미 방학이면 혼자 나를 데리고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는 시골 외할머니댁에 다녔는데, 멀미가 심한 나의 구토를 다 받아주고 닦아주고 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 예전엔 어린이날이면 어린이 대공원 입장료와 전철이 공짜였는데, 부모님을 대신해 해마다 데려가 줬다. 그 외에도 박물관, 전시회, 각종 행사에 꼭 함께 다녔다. 보통 남자들이 여동생 데리고 다니는 걸 귀찮아하는데 오빠는 참 성실히도 날 챙겼다. 크면서도 오빠 때문에 속상하거나 크게 싸운 기억은 없다. 마음이 얼마나 약했는지 누가 자기를 때려도 그 아이가 아플까 봐 같이 때리지 못했다. 한 번은 보다 못한 내가 나서서 오빠를 때린 애의 손가락을 물어뜯어놨던 기억이 있다.
요즘 오빠를 보면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힘들어하던 오빠의 속없이 착하기만 한 그 성품 덕에 삼 형제가 참 의좋게 잘 지낸다. 둥이에게도 더할 수 없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선물한다. 나만 제대로 잘 사는 것 같고 오빠는 짐이라고 여겼던, 함부로 폄하하고 교만했던 내가 부끄럽고 미안하다. 살다 보면 하는 일마다 안 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좀 낫다고 잘난 체할 필요 없다. 언제든 처지가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