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물줄기가 머리에서 뒷목을 거쳐 등을 타고 발끝까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린다. 온몸에 전율이 일고 뼛속까지 잘근잘근 밟아주는 듯한 짜릿함을 맛본다. "아~~" 야릇한 신음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이 소름 돋는 쾌감을 멈추고 싶지 않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하루의 피로가 물과 함께 하수도로 쓸려 내려간다. 바로 얼마 전까지 그렇게 덥더니 이제 아침에 '긴팔을 입어야 하나' 살짝 고민이 될 정도로 찬바람이 불어온다. 샤워하고 나오면 몸을 채 말리기도 전에 다시 땀에 젖던 게 엊그제인데 뜨거운 샤워가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아이가 어려 풀타임으로 일하기가 어려워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간간이 프리랜서로 일해왔다. 작년 겨울, 전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선배의 요청으로 리더십 프로그램을 맡아서 2, 3달 정도 운영했다. 과정 전체를 총괄하는 건 몇 년 만에 다시 하는 거라 긴장도 되고, 일 근육이 다 풀렸는지 먼 거리를 오고 가고 세부적인 것까지 신경 쓰고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전에는 체계적인 회사에서 일하니 도와주는 스탭도 많고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서 실무적인 일은 내가 할 게 없었는데, 밑에 직원이 하던 일까지 직접 하려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프리랜서의 비애라고나 할까? ㅋ
하루는 끝나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오랜만에 신은 구두 때문에 발가락은 부러질 듯 아프고 오래 서 있어서 다리,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바빠서 식사도 제대로 못 해 배는 또 얼마나 고픈지 요만큼의 기운도 없었다. 체면이고 뭐고 정류장에서 장에 갔다 오는 시골 할머니처럼 가방을 가슴에 끌어안고 쪼그리고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고 있자니 순간 화가 치밀고 내 신세가 왜 이리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아이가 생겨도 남편은 자기 일에 전혀 지장이 없는데, 나만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해야 하는 상황부터 짜증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처음에 도와준다던 스탭이 빠지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난 상황도 난감했다. 처음에 느꼈던 일할 수 있다는 즐거움과 나를 잊지 않고 찾아준 선배에 대한 고마움은 어디로 가고, 이 나이에 몇 푼 번다고 이러고 다니나 처량하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광역버스에서 내려 우리 집까지 걸어서 10분에서 15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날은 그 짧은 거리를 도저히 걸어올 수가 없어서 욕먹을 각오 하고 택시를 탔다. 다행히 욕은 먹지 않았지만 내려서 거의 기다시피 해서 집에 들어왔다. 마침 아들 주려고 만들어 놨던 닭죽 한 그릇 데워 먹고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고 피곤을 풀었다. 한참을 쏟아지는 물줄기를 목과 어깨에 맞고 서 있으니 굳었던 몸이 풀리고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야 우리 집엔 보일러가 놓였다. 그전까지는 연탄을 땠는데 겨울이 시작할 즈음 동네 각 집마다 월동준비로 김장을 하고 연탄을 들여놓는다. 그나마 겨우내 쓸 연탄을 넉넉하게 들여놓는 집은 형편이 나은 집이다. 한겨울 나면서 몇 번에 나눠서 들여놓는 집도 있었고, 매번 몇 장씩 낱장 연탄을 사다 때는 집도 있었다.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려웠지만, 부모님이 워낙 절약하셔서 쌀이나 연탄 김장 등 기본적인 생필품은 항상 넉넉히 들여놓으셨다. 연탄 광에 빽빽이 채워 넣은 연탄을 바라보며 올겨울 걱정 끝이라며 배부른 듯 바라보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연탄으로 겨울 내내 아랫목 뜨끈하게 난방도 하고 음식도 하고, 가족들이 쓸 따뜻한 물도 항시 데워놨다.
엄마가 아침 일찍 아궁이 솥에 물을 부어놓으면 아침밥을 하는 사이 따뜻하게 데워진다. 식구들이 일어나는 순서대로 그걸로 머리 감고 세수도 했다. 한 솥 데운 물로 온 가족이 써야 했으니 최대한 뜨겁게 데워 찬물을 타가며 아끼고 아껴 써야 했다. 그나마도 어쩌다 늦게 일어나면 뜨거운 물이 얼마 남지 않아 머리를 못 감는 날도 있었다. 내 성에 차게 뜨거운 물 실컷 써가며 편하게 머리를 감으려면 최대한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렇게 일찌감치 머리를 감고 다시 물을 부어놓으면 다른 식구들이 쓸 때까지 데워진다. 시간이 촉박하면 물이 데워지다 말기 때문에 시간 계산을 잘해서 움직여야 한다. 잘못했다간 식구들한테 아침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혹시라도 전날 밤에 연탄 가는 걸 깜빡해서 연탄불을 꺼뜨리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고 불편해서 어찌 살았을까 싶은데, 살면 다 살아지나 보다.
'그 추운 겨울에 연탄불에 물을 데워 한데서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감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렇게 추운 날 일하고 들어와 뜨거운 물에 실컷 샤워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이 나이에도 아직 찾아주는 곳이 있으니 감사한 거지.'
돌이켜보면 옛날보다 모든 게 더 점점 좋아지고 나아졌다. 편한 것에 익숙해지고 좋은 것을 누리면서 내가 참 감사를 잊고 있었다. 그때부터 따뜻한 물로 샤워할 때마다 감사를 고백하겠다고 나와 약속했다. 남편에게 화났던 것도, 치솟는 아파트값에 대한 불안도, 한 번씩 찾아오는 나이 드는 서글픔도 샤워 물과 함께 하수도로 흘려보내고 다정하고 성실한 남편이 있는 것에,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눈비 피할 집이 있음에, 그리고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여름에도 찬물로는 샤워를 못 해서 거의 365일 감사를 달고 살게 되었다. 그렇게도 불편하고 힘들었던 시절 덕분에 지금 이 시간에 감사를 고백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