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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투 Jul 28. 2021

잊지 못하는 향기

소나무가 춤추는 여인의 어깨 선처럼 우아하게 드리워진 바닷가에 슬프도록 붉은 노을이 지면, 멀리 대청마루에 앉아서 갯벌을 바라보던 어린 꼬마는 갑자기 무거운 상념에 젖는다. 심심해서였을까, 외로워서였을까 아님 서러워서였을까 해지는 바닷가는 참 서글펐다.


어려서 시골 외갓집에 자주 갔는데, 외갓집을 생각하면 노을 지던 바닷가를 서글프게 바라보던 어린 내가 보인다. 어린 꼬마가 느끼기엔 낯설고 무거운 감정인데, 그때의 나는 실제 그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푸근하고 신나는 시골의 기억과는 많이 다르다.

 

지금 생각해보니 몸이 약한 엄마가 일 좀 덜고자 삼촌이나 이모가 내려갈 때 딸려 보낸 것 같은데 나도 별로 거부하지 않고 나선 것 같다. 외할머니가 그다지 환영하지 않았음에도 꾸역꾸역 잘 따라갔다. 길게 있을 땐 여름에 가서 겨울을 맞이해 엄마가 겨울옷을 소포로 보내주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아들만 예뻐하고 "계집애가 000해"를 입에 달고 사시는 분이라 나를 사사건건 구박하셨다. 바지에 똥을 쌀 정도로 어린 나이였는데, 얼른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주는 게 아니라 일거리를 또 만들었다며 똥 싼 바지를 입은 채로 마당에 세워 놓고 한참을 혼내셨다. 뜨끈한 똥이 바지에 묵직하게 늘어져 있는 그 찝찝함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ㅋㅋㅋ


외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았지만 낮에 장에 가거나 일 보러 다니시느라 거의 집에 안 계셨다. 그래도 저녁에는 주머니에 두둑하게 사탕이며 캐러멜 같은걸 사 오셨는데, 그걸 기다리느라 할아버지가 오시기 한참 전부터 동네 어귀 나무 아래 앉아있는 게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였다. 고등학생인 막내 외삼촌은 피 끓는 청춘이니 놀러 다니느라 나랑 놀아 줄 시간은 없었던듯하다.


특별히 즐거울 것도 없고 기다려 주는 사람도 없는 외갓집에 반항하지 않고 매번 따라갔던 건 대밭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셔서였을까? 지나가면 어른들이 "어~ 상도 딸내미 왔구먼~"하고 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체해주는 서로 다 아는 작은 마을이었다. 엄마네 마을이었는데 사람들은 꼭 아빠 이름을 불렀다(출가외인 엄마보다 사위를 더 인정해주는 정말 옛날 사람들이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친척들도 몇 집 있었는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정확한 촌수는 모르고 집 앞에 대나무가 많아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대밭집'이라고 불렀다. 그 대밭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기 손녀도 아닌 나를 살갑게 대해 주셨다. 외갓집과도 가까워서 대문을 나서서 쪼르르 몇 발작만 가면 바로 도착!


입구부터 양쪽에  웅장한 대나무 숲이 반겨주고 마당 하늘엔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집(마주 보는 지붕 처마를 줄로 이어서 포도 넝쿨이 타고 올라가 마당 위 하늘을 포도가 다 뒤덮었다). 뒷 문간에는 눈이 까맣고 나보다 커다란, 예쁘기도 하고 약간 무섭기도 한 송아지가 있던 곳. 내가 가면 작은 나를 들어 올려 포도도 따게 해 주시고 옥수수도 삶아주시고, 이것저것 맛있는 게 끝없이 나왔다. 늦게까지 논 날은 대밭집서 당연하다는 듯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우리 집인 양 거리낌 없이 지냈다. '대밭집이 우리 할머니 집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주 생각했다. 나의 할머니들은 왜 하나같이 무섭기만 한 것인지. 그 집에도 내 또래의 손녀가 가끔 왔는데 같이 잘 놀았다. 근데 잘 놀다가도 한 번씩 심술이 났다. 내겐 없는 '대밭집'을 가진 너...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서 얼굴도 보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날은 대밭집에서 메주를 만드는 날이었다. 불린 콩을 삶아서  절구로 찧고 네모나게 만들어 마루에 늘어놓은 메주, 예쁜 아기 똥색의 메주가 마루에 일렬로 짚을 베고 누워있는데, 그 냄새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구수했다. 흡사 배고플 때 빵집 앞을 지나가는 기분과 비슷하겠다.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대밭집 손녀와 예쁘게 만들어 놓은 메주를 손가락으로 푹푹 파서 먹었는데, 그 맛이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을 만큼 기가 막혔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시골서 농사지은 신선한 콩으로 자식들 먹이려 정성껏 만들었으니  말해 뭐하겠는가. 그런 메주는 지금은 어딜 가도 못 산다.


먹자마자 뒤로 넘어갈 만큼 구수한 콩 맛에 우리는 도저히 메주 파먹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 어른들이 배탈 난다고 그만 먹으라고 하는 말이 정말 안 들렸던 것 같다. 그 맛있는 메주를 배 터지게 먹고 그날 밤 나는 똥꼬가 터질 정도로 설사를 해댔다. 죄 없는 외할아버지는 집 밖에 있는 화장실에 손녀를 데리고 다니느라 밤새 한 숨도 못 주무셨다. 아침이 되고 보니 그 집도 사정은 매한가지 ㅋㅋㅋ


비록 설사라는 대 참사가 일어났지만 그 참을 수 없는 구수함에 작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려가며 파먹었던 매주 향과 맛이 잊히지 않는다. 갓 만든 메주가 그렇게 냄새 좋고 맛있을 걸 사람들이 알까? 유난히 그 집 메주가 구수했던 건 그렇게 메주를 망쳐 놓아도 혼나지 않는 넉넉함과 날 예뻐해 주셨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부터는 방학 때마다 사촌언니가 있는 이모네 집으로 가느라 외갓집은 거의 가지 않았다. 크면서 한 번씩 생각나긴 했지만 대밭집은 자연스레 내 마음에서 잊히고 꼬마는 자라고 자라 어른이 되었다. 오빠가 장가가던 날 결혼식장에서 대밭집 할머니를 이십 몇 년 만에 뵀는데,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할머니 손을 잡고 아무 말도 못 하며 한참을 질질 짰다. 바지에 똥을 쌀만큼 어린애가 엄마를 떨어져 살갑지 않은 외갓집에서 눈치도 많이 봤을 텐데, 서글프고 적막한 시골에서 '대밭집'에서 만큼은 마음 놓고 아이다울 수 있었던 그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 때문이었겠지. 


구수하고 따뜻한 메주 향 같았던 대밭집 할머니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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