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집에서 가까운 직장에 다니셨는데, 점심값을 아끼려고 점심때 꼭 집으로 식사하러 오셨다.
그때마다 내게 군것질 값을 조금씩 주셨는데 나는 그걸 가지고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과자도 사 먹었다. 지금이야 먹을 게 차고 넘치지만 가난한 달동네 가게엔 살게 뻔했다. 쫀드기, 아폴로, 껌, 눈깔사탕, 과자 몇 개, 아이스크림 몇 개...
그중 가격이 정확히 기억나는 하드가 있는데 '서주 아이스주'는 50원, '서주 아이스조'는 10원이었다.
'서주 아이스조'는 '서주 아이스주'의 아류 같은 느낌으로 싼 가격만큼 불량식품의 향기가 많이 났다.
하드를 하나 다 먹고 나면 싸구려 색소 탓인지 입이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그래도 입이 벌건 아이는 하드 하나 먹은 티가 나서 다른 동네 꼬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위생관념도 없던 때라 친구가 하드를 먹으면 그 뒤로 아이들이 “한 입만 한 입만” 하며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다 선심 쓰듯 자기가 맘에 드는 친구에겐 한 입씩 주기도 했다. 내 돈 주고 사 먹을 때보다 한 입 얻어먹을 때가 백배는 맛있었다. 그때는 골목에서 하드 하나 들고 있는 애가 최고 권력자였다.
아직 어린 나이라 아버지가 어렵지 않았는지 아버지가 오시면 “아빠 10원만” 하고 손을 내밀었다. 보통 10원 정도 주시고 잔돈이 없는 날은 못 받기도 했는데 어쩌다 50원이라도 주시는 날은 신이 나서 팔에 날개라도 달린 듯 펄럭거리며 쪼르르 가게로 직행했다.
지금도 그날의 일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빠 10원만”하고 손을 내밀었는데 아버지가 무려 500원짜리 지폐를 주시는 게 아닌가. 그땐 500원짜리가 지폐였다. 50원 100원도 아니고 500원짜리 지폐는 태어나서 처음 받아봤다. 난 황당하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하고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아버지가 갑자가 왜 이런 선심을 쓰시는 건지 의아했지만, 혹 아버지 마음이 변할까 봐 돈을 들고 바로 가게로 튀었다. 잔돈이 없으셨던 걸까, 아니면 아버지도 그날 생각지도 못한 공돈이 생기셨던 걸까.
그날은 하루 종일 동네 구멍가게를 들랑 달랑하며 계속 과자랑 사탕, 하드를 사 먹었는데 파는 게 뻔한 동네 가게에서 먹어도, 먹어도 500원을 다 쓰지 못했다. 나중엔 돈 쓰다 지쳤다고 해야 하나? 바보같이... 남겨뒀다 나중에 또 사 먹으면 될 것을 왜 그날 하루에 다 쓰지 못해 그러고 다녔는지,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돈을 어쩔 줄 몰라하다가 다시 파산하는 거랑 살짝 같은 이치 같기도 하고ㅋㅋㅋ
내 나이 40을 훌쩍 넘긴, 유난히 습하고 덥던 어느 여름날 친구를 만나러 가다가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새겨진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퇴근길>
류시웅(2018 시민공모작)
유난히 일이 고된 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빈손이 서글펐지
닭 한 마리 사 들고 돌아가면
두 팔 벌려 달려드는 나의 똥강아지들
가끔 생각나네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오시던
뜨거운 붕어빵 한 봉지
그날은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번 날이 아니라
가장 일이 고된 날이었음을
아버지가 되어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네
눈물이 차올라 눈앞이 뿌예졌다. 생각지도 못한 선심에 하루 종일 입에서 단 내가 나던 그날, 아버지도 뜻하지 않은 공돈이 생긴 게 아니라 그날따라 유난히 사는 게 고되고 팍팍하셨던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