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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투 Aug 16. 2021

부자 아들

더운 여름의 끝자락, 아침저녁 부는 바람이 피부에 닿는 기분이 달라졌다. 며칠 사이에 날씨가 이렇게 바뀌다니, 덥네덥네  해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도 바뀌는 게 신기하다. 그 미묘한 날씨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건 만성비염인 내 코다. 아직 한낮의 날씨는 등이 따가울 정도로 덥지만 조금의 기온차에도 콧물은 찔끔찔끔, 코는 맹맹해진다. 이제 가을이구나... 비염이 알려준다.


평소에 남편과 아이와 시간이 될 때마다 저녁 산책을 나가려고 노력하는데 한여름에는 달려드는 모기도 싫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막힐 듯 더워서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저녁 날씨가 선선해져서 오랜만에 마음먹고 산책을 나섰는데 아이가 몇 걸음 안가 발이 아프단다. 여름 내내 수영만 해서 운동화 신을 일이 없었고 방학하고 한 달 남짓 더워서 슬리퍼만 신고 다녔더니 발이 커서 운동화가 작아진 걸 몰랐다. 


바로 발길을 돌려 아웃렛으로 향했다.(우리 아파트에서 걸어서 10분이 안 되는 거리에 아웃렛이 있다.)

이것저것 신어보고 골랐는데 역시 비싼걸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 간 김에 남편 운동화도 바꿨다. 남편은 워낙 자기 물건 사는데 관심이 없어서 운동화가 낡았으니 사러 가자고 했도 괜찮다면 계속 미루고 있었다. 잘됐다 싶어 남편이 자긴 됐다는 걸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해서  여러 디자인을 신어보게 하고 둘 다 운동화 구매 완료!!


신발을 고르다 괜찮아 보이는 슬리퍼에 눈길이 갔다. 사무실에서 신을 슬리퍼가 마땅치 않았는데 못 보던 디자인이고 세련돼 보여서 이리저리 살펴봤다. 난 사무실서 슬리퍼를 거의 신지 않지만 일 년에 몇 번은 필요할 때가 있다. 만지작만지작하다가 100%로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그냥 놓고 돌아서는데 아들 녀석이 마음이 쓰였나 보다. 가격이 비싸지 않으니 자기 용돈으로 사주겠단다. 그러면서 나한테 자꾸 사라고 한다. 가격표에 세일해서 15,000원이라고 쓰여있다. 자기 딴엔 지불 가능한 금액인가 보다. 아빠랑 자기 것만 사서 신경이 쓰인 걸까?


전에도 쇼핑몰에서 내가 원피스를 만지작 거리다 그냥 돌아서니 왜 안 사냐며 엄마 돈 없으면 자기가 용돈으로 사주겠단다. 마음에 들면 두 개 사란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마음은 찡하다. 괜찮다고 그냥 구경만 한 거라는데도 이 녀석은 계속 신경인 쓰이나 보다. 한참을 미련을 못 버리고 계속 사기를 권하는데 정말 내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명절이며 어른들 만날 때마다 받아서 저금해 놓은 용돈이 꽤 되는데 틈만 나면 그걸로 뭘 사준단다. 자기가 엄청 부자인 줄 안다.


집안 신발장의 10분의 9가 내 신발이고 10분의 1이 남편과 아이 신발인데, 그런 나를 신경 쓰는 아이가 귀엽다. 친한 동생이 옷가게를 해서 때마다 철마다 옷을 보내준다. 우리 집 옷방에 내 옷이 차고 넘쳐 잊고 안 입는 옷도 많은데 그런 나에게 용돈으로 옷을 사주겠다니 ㅋㅋㅋ


자기 것 사달라고 떼를 써야 정상인 어린애가 왜 그런 걸 신경 쓰는지 좀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엄마 생각해주는 아들이 기특하다. 아무 생각 없이 나섰다 두 명 운동화에 출혈이 컸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기분, 아들이 여자 친구 생기기 전까지 마음껏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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