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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투 Aug 17. 2021

49:51

이번 여름도 휴가로 캠핑을 다녀왔다.

아이가 캠핑을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코로나로 사람들과 최대한 부딪히지 않을 수 있는 게 캠핑만 한 게 없다.

그곳에 있는 동안은 여름을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서늘하고 신선한 공기가 좋았다.

밤에는 긴팔 긴바지를 입었음에도 추워서 침낭을 안 가져온 걸 후회할 정도였다.


낮에는 시원하다 못해 추운 계곡에서 지치는 줄 모르고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고

저녁엔 캠핑의 꽃인 고기와 불멍으로 기분 좋게 배부르고 나른한 시간을 보낸다.

모닥불에 마시멜로우를 구워 먹으며 그 달콤함에 다이어트는 뒷전으로 밀린다.

이게 캠핑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너무 신나 하는 아이를 보며 피곤함도 잊고 덩달아 더 행복해졌다. 

그런데 거기서 정말 믿기지 않는 장면을 목격했다.

우리 옆 텐트에서 아이가 문제집을 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설마... 그냥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하는 거겠지, 아무리 다시 봐도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우리 아들보다 어려 보이는데... 초등 3,4학년쯤 됐으려나?

뭐, 아이가 원해서 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조금 있다 아이가 울면서 칭얼거린다, 풀기 싫다고.

엄마는 어르고 달래며 조금만 더 하자고 한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에게 윽박지르거나 혼내지는 않는다.

학원 숙제가 많이 밀린 건가?

텐트의 불빛이라는 게 공부를 하기에는 너무 어두운데

저러다 눈도 나빠지면 어쩌나, 나 혼자 걱정이 한가득이다.


다음날도 우리 가족은 계곡에서 물총 싸움도 하고 목이 쉬어라 신나게 놀고 있는데

어제 그 아이는 물가에 멍하니 앉아 우리가 노는걸 부러운 듯 바라보기만 할 뿐

물속에 들어와 놀지는 않는다. 

엄마 아빠는 어디로 가고 아이 혼자 저러고 있는 건지 신경이 쓰인다.


전 같으면 그 엄마를 다짜고짜 욕했을 것이다.

저럴 거면 캠핑은 뭐하러 오나 애를 잡는구나 잡아 하면서

그런데 아이를 키워보니 울고 있는 아이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시키고 있는 엄마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얼마나 할 게 많고 불안하면 저렇게까지 할까.

우리나라 교육현장은 엄마 혼자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서 견딜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래도 아이가 캠핑장까지 와서 울며 문제집을 푸는 건 너무 안쓰러웠다.

그걸 시켜야 하는 엄마도 안쓰러웠다.

낮에 놀고 어차피 저녁에 시간이 넉넉하니 밤에 문제집을 풀게 하고서라도 

아이에게 캠핑의 재미를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는 그게 아이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겠지.


나는 아직 아이를 태권도나 축구, 스케이트 같은 운동을 제외한 학원은 보낸 적이 없다.

음악은 가르치고 싶었지만 아이가 강하게 거부해 못 가르쳤다.

아이가 공부에 관심이나 일말의 소질이라도 보였으면 나도 어떻게 해서라도 시켰을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ㅋㅋㅋ

남편과도 부모 둘 다 평범하니 우리 아들도 유전적으로 비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크게 욕심부리지 말자고 합의했다.

특별한 교육철학이 있는건 아니고, 

문제를 위한 문제를 풀기 위해 내 아이가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학원에서 보내야 하는 하는 게 싫을 뿐이다.

어쩌면 아이가 커서 왜 그때 억지로라도 더 공부를 시키지 않았냐고 원망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매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다른 엄마들의 그러고 있으면 큰일 난다는 걱정 속에서 갈대처럼 흔들린다.

100%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하고 싶은 마음 49%, 내 소신대로 키워보자는 마음 51%, 

간발의 차이로 아직까지 후자가 이긴 것이다.

내일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특별히 공부에 재능이 없는 아이를 포기 못하고 들들 볶다가 아이의 진로는 이도 저도 아닌 게 돼버리고

부모와의 관계도 깨지는 사례를 많이 봤다.

그렇다고 부모가 돼서 자식을 일찌감치 포기할 수도 없다.

뭐든 가능하다면 끝까지 지원하고 싶다.

나도 그랬듯 아이들은 그저 당장 노는 것에만 관심 있고 좋아하니 

미래야 어떻게 됐든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 둘 수만도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선을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이고 어디서부터가 욕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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