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림에 별 소질이 없다.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한다. 그저 근근이 살아가는 정도? 주위에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인데 살림도 그림같이 하고 아이들 교육도 잘 시키는 엄마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밖에 나가 돈 벌어오라면 겁이 안 나는데(이것도 젊었을 때 얘기다 요즘은 이 말도 겁난다) 살림을 잘하라면 바로 쪼그라든다. 그렇다고 살림을 못해도 이해해줄 만큼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세 식구 단출한데 식사도 소박하게 영양소만 신경 써서 건강하게 잘~ 익혀먹는 정도다. 다림질도 잘 못해서 요즘은 세탁소에서 와이셔츠를 세탁해주고 다림질까지 해주니 이보다 고마울 수가 없다. 나는 손으로 하는 걸 정말 못하는데(학교 다닐 때 만들기 시간이 제일 싫었다) 살림은 다 손으로 하는 것이라 그런 것 같다.
그중에서 청소를 유독 힘들어하는데 자잘한 물건들의 먼지를 일일이 털고 닦고 하는 게 성격에 안 맞고 나이 드니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그래서 물건들을 최대한 늘어놓지 않으려 노력한다. 짐이 많아지는 것도 싫어해 가구며 가전제품도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사지 않는다. 전에 엄마가 내가 싫다고 싫다고 하는데도 굳이 김치냉장고를 선물해 주셨는데 한동안 육중한 김치냉장고를 바라보며 가슴이 답답했다. 물건 없는 휑~ 한 집이 좋다.
집은 너무 깨끗하지도, 너무 지저분하지도 않다. 얼핏 보면 잘 정리된 것 같아 보이지만 서랍 속에 대충 넣어 논 것도 많다.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더 깨끗한 집을 포기했다. 모델하우스 같은 집은 아니어도 사람이 사는 집이니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청소가 필요하다. 매일매일 마대로 바닥도 닦고 손에 닿는 이곳저곳을 청소하지만 주말에는 집의 모든 창문을 열고 타조 털로 먼지도 털고 무선청소기가 아닌 힘 좋은 유선 청소기로 바닥은 물론 구석구석 먼지를 빨아내야 속이 시원하다. 그러려면 소파 밑이나 창틀, 손이 잘 닿지 않는 곳도 청소해야 한다. 제일 난코스는 아들방! 아직까지 자기가 만든 변신 로봇이며, 레고 완성품, 종이로 만든 각종 미니카와 딱지 등 잡다한 것들이 많은데 너무 소중한 것들이라 버릴 수는 없단다. 동심을 파괴할 수 없으니 일단 보관.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들어내며 먼지도 털고 걸레질을 하려면 여간 신경이 쓰이고 힘든 게 아니다. 침대 매트리스와 헤드 사이의 먼지도 들고 털어내려면 정말 힘들다. 라텍스를 쓰는데 아이가 어렸을 때 셋이 같이 자느라 슈퍼킹 사이즈를 사서 남편과 둘이 들어도 낑낑댈 정도로 무겁다. 그래도 이렇게 주말에 해주지 않으면 일주일 내내 찜찜하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토요일 늦은 아침을 먹은 후의 루틴이다. 어떤 날은 필 받으면 베란다 청소나 냉장고 청소, 서랍장이나 이불장 정리로 까지 확장된다.
이렇게 하고 나면 진짜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든데 그래도 기분은 가볍다. 너무 하기 싫은데 꼭 해야 하는 숙제를 마쳤다는 해방감(유효기간이 일주일밖에 안되지만)과 건강한 노동이 주는 노곤함으로 기분 좋은 나른함에 빠져든다. 이때 당을 좀 보충해줘야 하는데, 평소보다 조금 더 공 들여 커피를 탄다. 우유를 데우고, 데운 우유에 커피믹스 하나, 봉지 끝을 잡고 설탕 조절 약간, 그리고 인스턴트 알 커피 반 티스푼 추가 고된 청소를 끝낸 후 소파에 널브러져서 정성 들여 만든 믹스커피 한 모금... 머리카락부터 발가락 끝까지 짜릿함이 느껴진다. 언젠가 고현정이 광고하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바닷가 카페에서 마셨던 커피보다 더 쾌락적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카페에서 다양한 커피를 먹어봤지만, 내겐 역시 청소 후 마시는 대한민국 믹스커피가 최고다!!!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도 이보다 좋을 순 없다^^
과연 최고의 커피는 노동이 만들어내는 것인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