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투 Aug 06. 2021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전 직장에서 근무할 당시 친하게 지내던 직원이 있다. 업무도 같았고 사무실 바로 등 뒤에 앉아서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추천하고 함께 들으며 친해졌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습관은 변하지 않아서 음악을 듣다가 좋은 게 있으면 서로가 생각나 그때그때 공유한다. S는 참 맑고 순수한 사람이라 함께 있으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된 것 같고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삶에 대한 태도나 긍정적이고 따뜻한 그녀를 보며 많이 배운다.


그 친구가 결혼 후 외국에서 지냈기 때문에 평소엔 전화나 카톡으로만 연락하고 지금은 몇 년에 한 번 겨우 얼굴을 본다. 하지만 한국에 왔을 땐 S의 아들과 둥이가 동갑이라 우리 집에 와서 잠도 자고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는다. 아들도 외국에 친구가 있는 것을 은근 자랑하는 눈치다.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진심으로 서로의 삶을 걱정하는 친구다.


그 친구가 지금 한국에 와있다. 항암치료를 받는다. 암이라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보다 더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슬프고 절망스러웠다. 그렇게 착하고 순수한 아이(S는 이미 40대 중반의, 아들을 둔 엄마가 됐지만 나에겐 그 시절 20대 순수하고 맑은 아가씨로 아직 남아있다)가 병까지 얻다니. 

화가 나고 막막하고 무서웠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 외국에서 가장이 되어 소처럼 일한 것 밖에 없는데...

그래서 병이 생긴 것만 같고 결혼 후 계속 고생시킨 S의 남편도 원망스러웠다.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오히려 담담하고 담대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물론 처음에 너무 충격이었겠지만 금방 마음을 추슬렀다. 아프지만 그래도 감사할 거리를 찾아내고 치료도 열심히 받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알리고 기도도 부탁한다. 중간중간 내가 걱정할까 봐 경과 보고도 성실히 해준다.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져 삭발한 모습도 생각보다 자기 두상이 예쁘다며 인스타에 올리고 예쁜 가발을 샀다고 자랑한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게 되어 감사하다며 치료 중간중간 여행도 열심히 다닌다. 똑같이 아파도 그 과정을 통과하는 모습은 참 다르다.


그 친구를 보기 위해 당연히 한걸음에 달려가고 항암치료에 좋은 보조식품, 암환자 용품 등을 사다 나르고

집으로 불러 아낌없이 좋은 것을 먹이고 같이 기도했다. 이럴 때 내가 더 여유 있어서 더 차고 넘치게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없어서 오랜만에 진심으로 속상했다.


치료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요즘 컨디션은 어떤지 카톡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프면서 주위 사람들 덕에 자기가 참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많이 느꼈다고, 자기도 받은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얘기하면서 그게 언니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나를 위해 수십만 원짜리 코칭 교육을 결제해주었다. 전에 회사에서 코칭 교육도 다 받았지만 오래되기도 했고 코칭 쪽으로 일이 자꾸 들어와서 다시 제대로 코스를 밟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 전 자기가 들은 코칭 교육이 너무 좋다며 바로 결재를 하는 게 아닌가( S는 아프면서도 한국에 온 김에 코칭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책도 열심히 읽고 있다).


나의 커리어를 위해서도, 둥이의 엄마로서도 좋을 것 같고, 이웃을 돕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그냥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언니의 미래에 투자하는 거라 더 의미 있고 기쁘다고 했다. 나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는데 기회가 생겨서 너무 감사하다고, 목구멍이 꽉 막히고 눈앞이 또 뿌예진다.


그러고 보니 재작년에 왔을 땐 명품지갑을 아무렇지 않은 듯 내게 주고 갔다. 어쩌다 생겼는데 자긴 별로 잘 쓸 거 같지도 않고, 한국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시선을 더 신경 쓰니 언니가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며.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안달인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누구보다 세상을 원망해도 되는 상황인데 받은 사랑이 많다며 그 사랑을 베푸는 친구, 덕분에 나도 오늘 내가 참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다시 한 번 느낀 가슴 찡한 하루였다. 참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친구다.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 나도 받은 사랑을 다시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려면...







이전 13화 세계 최고의 커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