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선(線)을 이야기하다

영화 기생충(Parasite) 1부

by 닥터리즈

리즈의 부동산 인문학] 1권. 욕망의 집


가난은 모든 것을 이해받을 수 있는 충분조건이 아니다.


영화 포스터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는 거잖아요.


그 생각에서 불행이 시작된 것은 아닌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박 사장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숙주가 결코 함께 하기를 원하지 않는 기생충 같은 존재다. 그래서 영화는 박 사장의 인간됨을 일방적으로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박사장과 기택의 가족을 평가해 보자. 기택의 아들과 딸은 학력을 위조하여 가정교사로 취업한다. 기택은 아내를 취직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던 가정부를 결핵 환자로 오해받게 하여 쫓아낸다. 박사장네 가족이 여행을 가자 자기들 집인 양 먹고 마시며 공간을 마음껏 점유한다.


이것은 지하 벙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박사장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지하실을 몰래 점유하고 박사장네 음식을 허락 없이 공유한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당신이라면 이런 사림들과 행복을 나누고 싶은가?


영화 <기생충>은 집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인간을 계급화하고, 그들 사이에 넘지 못할 '선'을 긋는지 잔인할 정도로 정교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줄거리

저지대 반지하에 살고 있는 기택의 가족은 전원 백수로 피자 박스를 접으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사이는 좋다. 어느 날 장남 기우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 준 고액 과외 자리로 가족에게는 모처럼 희망이 생긴다.


글로벌 IT 기업 CEO인 박사장의 고지대 저택에 도착하자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가 기우를 맞이한다.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은 선을 사이에 두고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다가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휩싸이게 된다.



냄새가 선을 넘었다


영화는 냄새라는 요소를 계층 간 넘을 수 없는 선으로 상징하며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영화 중 냄새와 선을 묘사하는 대사를 보자.


박 사장: 예. 왜 갑자기 관둔 건지 집사람은 설명도 안 해주고 참...(중략)

상당히 괜찮은 아줌마였거든, 그 양반이. 집안 구석구석 관리도 잘하고, 그리고 매사에 선을 딱 잘 지켜. 내가 원래 선을 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데,



박 사장: 가만있어 봐. 어디서 그 냄새가 나는데?
연교: 어, 뭔 냄새?


박 사장: 김 기사님 스멜. 그 뭐라 그래야 돼, 그거?
연교: 노인 냄새?


박 사장: 암튼 그 양반, 전반적으로 말이나 행동이 선을 넘을 듯 말 듯하면서도 결국엔 절대 선을 안 넘거든. 그건 좋아.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냄새가. 씨... 차 뒷자리로 존나게 넘어와, 냄새가.


연교: 뭔 냄새길래?


박 사장: 몰라. 암튼 뭐 말로 설명하긴 힘들고, 가끔 그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있어. 그런 거랑 비슷해. 지하철 타는 분들의 특유한 냄새가 있거든.



<기생충>의 박 사장이 강조하는 '선'은 빈부의 격차가 만들어낸 장벽이다.


선을 넘어오던 그 퀴퀴한 냄새는 그들로서는 출처도 추측하기 힘든 가난의 냄새다. 오랫동안 그들의 공간에서 베인 냄새. 공간의 흔적이다.


박사장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경멸하고, 냄새가 선을 넘어오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박사장이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는가?



선(線)의 폭력성: 보이지 않는 칼과 보이는 칼


박 사장은 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그어놓은 '선'은 기택의 인격을 서서히 난도질하는 무형의 칼날이었다.


박사장은 그를 리스펙하는 지하층 근세의 죽음 앞에서 냄새가 선을 넘는 것을 못 참고 노골적으로 본심을 드러내고 만다. 박사장이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은 존재를 부정당하는 모멸의 순간이었다. 그 순간 기태도 박사장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만다.


그러나 ​박사장의 죽음은 개인의 악행에 대한 심판이라기보다, 타자의 고통을 '냄새'로 치부하며 선을 긋는 사회 시스템이 맞이할 필연적 파국에 가깝다.




​영화의 마지막, 기우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그 저택을 사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우리는 모두 기우처럼 '언젠가는 저 높은 곳의 집'을 꿈꾸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반지하로 밀어내며 그 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신의 집은 당신을 보호하는 보금자리인가, 아니면 타인을 배제하기 위해 세운 견고한 담벼락인가.


조금 더 들여다보기


기태가 그의 반지하 집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스틸컷이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 반지하와 저택이라는 공간만 비교하며 본다. 그러나 우리는 늘 공간의 내부를 놓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공간의 내부를 보는 것이 바로 부동산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반지하와 저택의 지하실


반지하는 한국 도시 주거의 특수한 산물이다. 원래는 재난을 대비해 만들어졌지만, 주택이 부족해지자 그 반지하 공간을 주거 공간으로 전환시켜 사용했다. 저택의 지하실도 원래는 방공호로 설계되었던 공간이다.


반지하와 지하실, 그곳은 재난 시 대피하기 위한 공간이다. 우리가 그 공간의 내부를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을 냄새로 선을 긋고 함부로 밀쳐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재난 당한 사람을 보고 눈감는 것과 같다.

영화 속 계단과 저택의 선들을 그저 예술적으로 감상하더라도 '타인이 가진 선에 대한 배려'라는 메시지는 마음 한구석에라도 메모해 두자.



닥터리즈 인문학 노트: 조금 더 읽기


영화 정보: <기생충(Parasite, 2019)> - 봉준호 감독. 한국 영화 최초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및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 수상작으로, 공간을 활용한 계급 묘사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기생충>은 사람 간의 계급적 선을 냄새라는 감각으로 해석하며 현재 한국에서 심화되는 부의 양극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건축적 장치: 영화 속 박 사장의 저택은 실제 집이 아닌 세트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저택-반지하-지하 벙커로 이어지는 수직적 구조와 유리창을 이용해 단절된 현대 사회의 계층 구조를 잘 표현했다. 또한 기택네 가족이 살던 반지하 집 또한 계단과 구조물들의 높이, 단차 등을 통해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삶의 태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 왜 기생충인가?


기생충과 숙주는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죽는, 생사를 같이하는 관계다. 그러나 이것은 기생충의 입장이다. 숙주의 입장에서 보면 기생충은 결코 함께 하고 싶은 존재가 아니다.


박 사장의 집을 숙주 삼아 그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기택네 식구들과 문광네 부부는 마치 숙주를 두고 경쟁하는 기생충과 닮았다.(계속)





영화는 선을 잘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빛을 더 잘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이 빛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해 보자.


To.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 작가의 한마디

너무나 잘 알려진 영화라서 웬만큼 써도 뻔한 글이 될 것 같아 그냥 힘을 다 빼고 편하게 썼습니다.(*・・)σ

분명 누군가 제 글을 읽고 계신 것 같기는 합니다. 고맙습니다.

From. 브런치에 조금 적응한 닥터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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