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지(The Good Earth)
[닥터리즈의 부동산 인문학] 1권. 욕망의 집
당신에게 땅은 생명인가, 아니면 그저 채워지지 않는 허기인가?
영화 <대지>는 평범한 농부 왕룽이 흙과 더불어 일구어내는 생존의 기록이자, 동시에 그 흙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지독한 집념을 보여준다.
대지(The Good Earth) 줄거리 요약:
가난한 농부 왕룽은 근면한 아내 오란과 결혼해 땅을 일구며 살아간다. 성실한 노동 덕분에 수확이 늘고, 땅은 가족의 생존과 자존의 근원이 된다.
그러나 가뭄과 기근이 닥치고 가족은 생존을 위해 남쪽 도시로 떠난다. 도시에서 극심한 빈곤을 겪지만, 우연한 기회로 많은 돈을 손에 넣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왕룽은 다시 땅을 사들이며 부를 쌓는다.
부유해질수록 왕룽은 오만해지고 가정과 아내를 소홀히 한다. 오란은 묵묵히 헌신하지만 점점 병들어간다. 이야기는 인간의 탐욕과 겸손, 그리고 땅과의 불가분한 관계를 그리며 끝난다.
조금 더 들여다보기:
왕룽은 땅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젊은 시절의 그는 소유자가 아니라 관찰자였다. 갈라진 흙의 결을 읽고, 비가 오기 전의 냄새를 맡으며, 땅이 허락하는 만큼만 살아가던 인간이었다. 그때 땅은 자산이 아니었다. 삶 그 자체였다.
빈손으로 시작해 가뭄과 기근의 고통을 견뎌낸 왕룽은 오직 땅만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땅을 얻기 위해 평생을 바친다.
하지만 왕룽이 땅을 가지게 되자,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땅을 잃기 시작한다. 더 많은 토지, 더 넓은 저택, 더 많은 소유. 숫자는 늘었지만, 감각은 무뎌졌다.
흙은 발아래에 있지만, 시선은 이미 땅을 떠나 있었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거대한 부를 이루지만, 그가 소유한 땅이 늘어날수록 역설적으로 그의 정신은 황폐해진다.
흙을 사랑하던 청년은 어느덧 땅의 크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간다.
부동산은 언제나 인간의 욕망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처음엔 ‘살기 위해’ 필요하고, 그다음엔 ‘지키기 위해’ 집착하며, 마침내는 ‘증명하기 위해’ 소유한다.
『대지』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땅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땅 위에 세워져 있는가? 왕룽의 비극은 가난이 아니다. 그의 비극은 준비되지 못한 성공 때문이었다.
노동으로 번 부를 지혜롭게 다루지 못했을 때, 땅은 더 이상 삶의 뿌리가 아니라 인간을 고립시키는 커튼이 내려진 무대가 된다.
왕룽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가 평생을 바쳐 모은 땅들은 결국 다음 세대의 손으로 넘어가거나 흩어질 운명에 처한다.
부동산 현장에서 종종 이런 장면을 본다. 많은 건물을 가진 사람이 부를 누리지도 나누지도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경우를. 그리고 종종 듣는다. 자신이 일군 부를 죽고 나서 자식들에게 물려줄 거라고.
『대지』는 말한다. 부동산의 본질은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삶의 태도 이전이라고.
땅을 사랑하되, 땅 위에 자신을 세우지 말 것. 그것이 왕룽이 끝내 깨닫지 못한, 그러나 우리가 배워야 할 부동산의 인문학이다.
부동산의 역사는 곧 인간이 땅과 맺어온 관계의 역사다. 현대인들에게 '내 집 마련'은 생존의 안식처를 찾는 숭고한 행위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왕룽처럼 땅 그 자체보다 땅이 가져다줄 부와 권력에 집착한다.
척박한 땅을 일구던 왕룽의 손톱 밑 흙 때가 고귀한 땀의 증거였다면, 현대의 부동산 투기는 그 땀의 가치를 지워버린 채 오직 '소유의 크기'만을 쫓는 것이다.
우리는 안식을 위해 집을 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집을 갖기 위해 현재의 안식을 포기하며 살아간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그의 저서 <공간의 시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집은 우리의 최초의 세계이며, 그것은 진정한 하나의 우주이다."
왕룽에게 땅은 그의 우주였고 생명이었다. 그러나 그가 땅을 '생존의 토대'가 아닌 '소유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그의 우주는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집이 우리의 우주가 되려면, 그곳은 욕망이 채워지는 곳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깃드는 곳이어야 한다.
닥터리즈 인문학 노트: 조금 더 들어가 보기
영화 정보: <대지(The Good Earth, 1937)> - 시드니 프랭클린 감독. 펄 벅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고전 명작으로, 당시 오스카 여우주연상과 촬영상을 받으며 흙의 질감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원작 및 저자: 펄 벅(Pearl S. Buck) - 미국 최초의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국에서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대지>는 서구 사회에 동양의 강인한 생명력과 땅에 대한 집착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철학적 배경: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시인. <공간의 시학>을 통해 공간이 인간의 상상력과 꿈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며, 집을 '안식의 궁극적 장소'로 정의했다.
인문학적 메시지: 가난할 때의 왕룽은 성실하고 겸손하지만, 부자가 될수록 탐욕과 오만에 빠졌다.
부는 인간을 성장시키기도, 타락시키기도 한다. 부 그 자체보다 부를 대하는 태도가 인간을 규정한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평수를 늘리고 입지를 따지는가. 결국 우리가 마지막으로 소유하게 될 땅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그 작은 공간뿐인 것을.
오늘 밤, 당신의 거실에 앉아 가만히 자문해 보라. 지금 당신이 딛고 선 이 땅은 당신의 영혼을 품어주는 우주인가, 아니면 당신을 끝없이 옥죄는 욕망의 족쇄인가.
To.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 작가의 한마디
첫 글을 열어줄 영화로 어떤 작품을 고를지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워낙 좋은 영화가 많아서 고르는 내내 행복한 숙제를 하는 기분이었어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고른 영화는 결국 <대지>였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도 후보에 있었지만, 제가 이 작은 공간에 소설의 거대한 스케일을 다 담아내지 못할 것 같아서 다음을 기약하며 펄 벅의 <대지>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영화를 보고 글을 쓸 때와는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네요. 누군가에게 평가받는다는 생각에 조금은 부담스럽고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
♤ 글을 읽으시다가 문득 궁금해지거나, 나중에라도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추천해 주세요. 기다리고 있다가 다정하게 응답하겠습니다! f(^_^)
From. 브런치 꼬꼬마 작가 닥터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