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경노 Feb 26. 2022

보통이 사는 삶

보통의 위로


어느 하루.

하기 싫은 일도 어떤 날엔 문득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결혼을 하기 전엔, 금요일 퇴근 후 저녁이 가장 바빴다.

불금이라는 단어가 한참 유행을 하던 시기.

나는 반대의 밤을 보냈다.

주말을 맞이는 홀로 분주했던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알람 소리가 없는 단 2일의 시간.  내가 선택한 것들만 소리를 내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 마음으로 7~8평 정도 되는 나의 집을 깨끗이 닦았다.

사실 집이라기보다는 방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그곳을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욕실 청소를 했다.

배수구에 걸려 있는 머리카락까지 깨끗하게 치우고 단정해진 욕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물기가 마르기 기다리며 창문도 활짝 열어 두고 머리를 말리는 시간.

금요일 저녁, 내 방엔 티브이 소리도 음악 소리도 없었다.


그때 당시엔 내 작은 몸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가 굴러가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다 사람들이 살아가며 내는 소리였는데 나를 압도하는 소리처럼 느껴졌었나 보다.

지하철 소리, 차가 다니는 소리, 사무실 내 전화 벨소리, 팩스, 프린터기, 스캐너 등 각종 사무기기 소리, 사람들의 키보드 소리…

그리고 그때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의 말소리.

회사 내에서 말로 뱉어지는 모든 소리는 좋은 소리랄  없었다.

물론, 그때의 나는 가끔 농담도 했고 웃기도 했지만 잦은 두통에 시달렸고  귀가 아프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음악도 듣지 않고, 라디오도 듣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집 앞 지하철 역 이름이 보일 때까지 허공만 보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차 안에서는 라디오를 듣지 못한다. 음악이나 DJ 홀로 내는 소리는 괜찮은데 게스트가 나와 DJ와 대화를 나누며 내는 소리는 지금도 듣지 못한다.

알 수 없는 내 멀미 증상 때문에 라디오를 좋아하는 남편도 내가 있으면 라디오를 켜지 못한다.


어느 순간엔, 불금을 부르짖으며 만남을 청하던 친구들의 연락을 피했다.

그때 우린 돈을 버는 성인이 되었다며 거침없이 소비를 하고, 각자 가진 것들을 과시하며 신난다며 낄낄거리면서도 속으로는 남과 나의 처지를 끊임없이 비교했던 것 같다.

핸드폰엔 즐거워하며 찍은 사진이 가득했는데도 나는 텅 비어 있었다.


집으로 숨어드는 금요일 저녁.

내가 살아 있기 위해 내는 소리에만 집중하며 주말을 보냈다.


금요일 저녁에 널어놓은 1주일치 수건을 토요일 오후에 걷어 탁탁 털어 접어 놓는  시간

그때를  좋아했었다.

금요일 저녁에 건조대에 널어 두고 주말 내 햇볕 바짝 마르면  남아 있는 먼지를 탁탁 털고 반듯하게 접어 은 수건들은.

마치  같았다.

주중 먼지와 습기가 가득 묻은 나를 바짝 말려 정돈 해둔 것 같았다.

세탁을 마치고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수건들을 보면서, 나는 또다시 시작되는 1주일을  견딜  있을  같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주말을 준비하는 금요일의 분주함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대신 아이의 패턴대로 굴러가는 주말이 생겼다.

아이가 늦잠을 자면 우리도 늦잠을 자고, 아이가 일찍 일어나면 우리도 무거운 몸을 일으키게 되었다.

나도, 남편도 나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늘 각자의 시간을 바라고 기다리지만 아이가 겨우 낮잠에 들면 같이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다.


결혼을 하니 빨래는 자연스럽게 남편이, 주방은 자연스럽게 내가 맡게 되었다.

수건은 잘 개지 않게 되었다.

가끔 남편이 주말 근무를 하러 가는 날엔 혼자 1주일치 밀려 있는 숙제를 하느라 하루 종일 분주했다.

혼자 살던 때와 비교해서 3배로 불어난 빨래를 처리하느라 하루 종일 세탁기가 돌아갔다.

건조대 3개 가득 널려 있는 빨래를 보며, 돌아서면 숙제가 생겨나는 공간에 갇힌 기분을 느꼈다.

하기 싫은 것이 되었다.


남편이 주말 근무를 나간 어느날

아이가 잠든 틈을   못한 집안을 하던 중,분주한 시선에  마른 수건이 보였다.

남편이 없으니 내가 얼른 정리하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른 수건을 가득 걷어 앉았다.


탁.탁.

하나 두개 수건을 개다 보니 문득 고요하게 편안한 나를 발견했다.

며칠째  시끄러운 친정,매일 매일이 꼴사나운 직장,아이에 대한 부채감,고단함에 날카롭게 반응 하던 부부 사이

5분전까지만 해도 뻑뻑해진 체인을 수리할 틈도 없어 억지로 감고 굴러 가던  자전거 마냥 삐걱 대며   나였다.


가지런히 개어진 수건을 보며 문득 주중의 상처를 회복하던 예전의 나의 주말이 떠올랐다.


하기 싫은 일도 어느 날 이렇게 문득 위로가 된다.


아이가 잠들었고, 남편은 없었다.

하루 종일 종알거리는 아이 목소리도, 남편이 하루 종일 틀어놓는 티브이 소리도 없는…가까운 소리는 없고 멀리서 간간히 들리는 차 다니는 소리,아파트 단지 내 누군가가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만드는 고요함.


결혼 생활이 싫은 게 아니다.

남편도 아이도 싫어서가 아니다.

완전하게 가질 수 있는 나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저녁에 문을 열고 들어온 남편에게 선심 쓰며 말했다.

“ 주말에 언제든 휴가 줄 테니 친구들하고 여행 가.”


몇 주 뒤 남편들은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

나도 오랜만에 금요일 저녁에 장을 보고 아이와  단 둘이 보낼 주말을 준비했다.

분명 퇴근길 지친 몸으로 빨리 장 봐서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종종걸음으로 다니던 마트였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채우는 시간, 상대를 채워주는 시간.

의도적으로라도 그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꼭 언제 얼마만큼이라고 정할 필요 없이, 틈틈이 서로에게 그 시간을 선물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시간이든, 공간이든.




















작가의 이전글 회사는 다녀도 문제,안 다녀도 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