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라방 – 라이브방송

서영 #02

by 제난희

- 김유나3737 빨간 모자 88번

- 고지유 9238 빨간 모자 88번

- 최정하 2271 빨간 모자 88번


서영이 들어섰을 땐, 이미 전쟁이 한창이었다.

채팅창은 쉴 새 없이 튀어 올랐고,

판매자는 번호를 부르며 손에 쥔 상품들을

카메라 앞으로, 다시 상자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화면 속 선반 위 물건이 하나, 둘씩 사라질 때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손에 넣는 소리 같았다.

모두가 동시에 무언가를 쟁취하고 있었다.

주문, 호출, 외침.

완판.

놓친 사람들만 조용해졌다.


이곳은 밤을 무시하는 공간이다.

시계를 보면 열한 시를 넘어가지만,

분위기는 더 달아오르고 있었다.


판매자는 창고 끝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가쁜 숨도 가라앉지 않은 채, 다음 상품을 보여준다.


“시원한 소재의 아주 얇은 여름청바지예요.

사이즈 다 있고요, 이것도 백화점 납품 상품이에요.

수량 많지는 않아요. 허리에 히든 밴드도 있고요.”


익숙한 톤, 적당한 웃음.

입어 보이는 손길도 능숙했다.

- 언니 입어주세요! 핏 보고 싶어요!

- 언니 역시 입으니까 진짜 예뻐요! 사고 싶어요!

- 입어주시니까 너무 좋아요.

- 언니는 진짜 뭘 입어도 다 잘 어울리네요.


채팅창은 칭찬으로 들썩였고,

판매자는 “언니들이 입으면 더 예쁘지~”라며 한 템포 늦은 미소로 받았다.


서영은 그 모습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칭찬을 받는 것도, 그렇게 능청스럽게 넘기는 것도.

자기도 회사에서 그랬다면, 조금은 덜 피곤했을까.


“번호 부를게요. 50번—”


서영은 반사적으로 주문을 입력했다.

- 이서영 여름청바지 50번


순간, 뭔가 빠졌다는 걸 느꼈지만

이미 채팅은 흘러갔고, 상품은 빠르게 사라졌다.


판매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주리 4352, 이서영… 아, 번호 없네요.

다음 사람, 황민하 9251. 여기까지 호명할게요. 완판입니다.”


잠시 후, 채팅창에 익숙한 아이디가 떠올랐다.

- easybusymom 주문하실 때 아래 공지 읽어봐 주세요.

이름, 전화번호, 상품 번호 적으셔야 해요. 아니면 호명 안 됩니다.


그 한 줄이, 쏟아지는 채팅들 속에서 선명하게 박혔다.

서영은 마치 혼난 아이처럼, 핸드폰을 가만히 쥐고 있었다.

그녀는 단호했다.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도, 대신 대답을 달아주고 있었다.

가격, 재고, 사이즈까지.


그 아이디는 낯이 익었다.

요즘 자주 눈에 띄는 이름.

잊으려야 잊히지 않는 말투였다.


자정까지만 한다던 방송은

새벽 두 시를 넘기고 있었다.

- 판매자님, 고생하세요. 전 내일 출근이라 먼저 나가요~

- 핸드폰을 얼굴에 몇 번이나 떨어뜨렸어요. 내일 또 와주세요~


천천히 사람 수가 줄어들었다.

200명이던 방은 100명대, 70명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easybusymom은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가 붙었다.

- 이 옷 사서 받았는데, 진짜 예뻤어요!

- 배송비는 3,500원 / 10만 원 넘으면 무배입니다.

- 카드 결제는 10만 원 이상부터 가능해요!

- 사장님, 저 이거 사고 싶어요. 큰 사이즈도 보여주세요!

- 사장님은 좋겠다, 날씬해서~


그녀는 계속 말했다.

말하면서, 더 붙잡히는 느낌이었다.

판매자도 가끔 이름을 불렀다.

늦은 시간인데도, 웃으며 화답했다.

그게 또 이어지게 만들었다.


서영은 알았다.

라방을 지금 꺼야 한다는 것.

내일 아침도, 출근도, 아이들도.

하지만 끄면 뭔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기회를 놓친 느낌.

정확히 무엇을 놓치는지도 모르겠는 그것.


핸드폰은 여전히 손에 들려 있었고,

새끼손가락이 지끈거렸다.

몇 시간을 누워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 안의 모두가 잠들었다.

그 집에서,

잠들지 않은 사람은

서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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