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야, 누가 먹었어』
오늘은 모의고사를 쳤다.
수현은 오늘만큼은 좀 쉬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걸까.
시험이 끝나자 수현은 얼른 집에 도착하고 싶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현관을 들어서며 수현은 습관처럼 말했다.
물론 집엔 아무도 없다.
엄마, 아빠는 출근하셨고, 오빠는 학교에 갔을 것이다.
사실 그 인간이 어딨는지는 잘 모르지만… 살아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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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교복을 벗어던지고, 손발과 얼굴을 대충 씻는다.
어렸을 때 외출하고 돌아오면 씻던 습관인데, 오늘처럼 더운 날엔 유독 개운하다.
피로가 수돗물과 함께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갓 씻은 맨발로 거실을 돌아다니는 느낌을 수현은 좋아한다.
엄마가 청소를 하고 나간 날엔, 쫙쫙 달라붙는 장판 위를 걷는 감촉이 유난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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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파에 털썩 누워 TV를 켰다.
아직 햇살이 환하게 집 안으로 들어오는 오후.
이 시간대에 집에 있는 건 참 오랜만이다.
아직 해가 떠 있다는 건, 오늘이 많이 남았다는 뜻이니까.
수현은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는 걸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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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있는 힘껏 뻗어 선풍기 버튼을 누른다.
딸각—
“아, 시원해!”
오빠가 없는 오늘은 리모컨도 내 차지다.
공부를 해야 하지만, 오늘은 잠깐 농땡이를 피울 작정이다.
오랜만에 켜보는 TV라 그런지 무엇을 봐도 다 재미있어 보인다.
못 보던 드라마, 음악 방송, 투니버스조차 반갑다.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수현은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리모컨을 탁자 위에 툭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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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과자 한 봉지를 집어 온다.
자갈치.
수현이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문어 모양의 과자.
아마 백 퍼센트, 아빠가 사다 놓은 거겠지.
“엄마는 분명 잔소리했겠지.”
혼잣말을 하며 봉지를 뜯는다.
봉투가 열리는 동시에 바다와 해산물의 짭짤한 냄새가 코끝을 파고든다.
수현은 코를 막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 다 들이마신다.
“흐으으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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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의 중간을 찢어 넓게 펼쳐놓고, 잘생긴 문어들부터 하나하나 집는다.
혀끝에 올렸다가, 그 혀를 쏙 집어넣는다.
씹기도 하고, 녹이기도 하고, 문어 과자로 별의별 장난을 다 친다.
혀끝에 굴리고, 손가락으로 꼬리를 잘라보기도 한다.
어릴 적처럼 논다.
“그냥 좀 조용히, 얌전히 좀 먹어. 나이가 몇 살인데… 어이구, 저 철딱서니.”
엄마가 분명 없는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귀가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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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화면에 고정된 채, 웃고 울고,
마치 수현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 그 순간에 완전히 몰입했다.
오랜만에 즐기는, 수현만의 슬기로운 드라마 생활이었다.
그렇게 드라마가 끝나고 수현은 과자를 먹으려고 무심코 손을 뻗었다.
‘없다! 없어…’
시선은 TV에서 과자 봉투 위로 향했다.
정말, 없었다.
‘거 봐, 수현. 내가 없다고 했잖아?’
손가락이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다 먹었나?’ 수현은 생각했다.
‘난 기억이 없는데?’ 하고 뇌가 이야기한다.
‘난 TV 보느라 못 봤어.’ 눈이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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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럽다.
열일곱, 수현은 지금 참 혼란스럽다.
배는 부르지 않은데, 과자는 없다.
납득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수현은 당황스럽다.
“…내 과자, 어디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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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엔 빈 과자 봉투만 쫙 펼쳐져 있었다.
집엔 분명 나 혼자였고, 처음에 몇 개 집어 먹은 기억도 또렷한데…
정말, 내가 다 먹은 걸까?
나 혼자 있었으니까 내가 먹은 게 맞겠지?
아님… 오빠 새끼가 어디 숨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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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시간, 수현은 이 황당한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털어놓았다.
“너무 집중해서 먹은 걸 기억 못한 거겠지.”
엄마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공부 좀 그렇게 해라!”
오빠 새끼는 비웃듯 말했다.
“과자 또 사줄게.”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도 수현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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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정말 내가 먹은 게 아닐 수도 있는데.
혹시 내가 TV에 집중하는 동안
누군가 다녀간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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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온 수현은
침대에 몸을 던져 누웠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 자갈치, 누가 먹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