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굿모닝
“띠띠띠띠-, 일어나~ 아침이야!”
“띠띠띠띠-, 일어나 아침이야!”
탁상시계 알람 소리가 너울이를 깨운다.
‘아, 방학이라구… 알람을 누가 켜놓은 거야~’
너울이는 알람시계를 찾아 더듬더듬 침대 머리맡에 손을 뻗는다. 알람을 끄고, 눈을 감은 채 촉감 좋은 여름이불에 돌돌 말려 들어간다.
방학이 시작된 아침, 너울이는 너무 좋다.
늦게 일어나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엄마도, 사실은 방학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아직 자고 있는 듯하다.
조용한 집의 아침은 너울이에게 신기하다.
‘이 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 있다니… 아침엔 우리 집이 이랬구나.’
너울이는 혼자 너무 좋아한다.
침대 위에 있는 오래된 고양이 시계를 바라본다.
‘너도 이제 내일부터는 방학이야!’
잠이 달아났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천장을 보며 멍을 때린다.
너울이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물들어 있다.
시원하게 세수를 하고, 선풍기 옆에서 로션을 쓱쓱 바른다.
편안한 잠옷은 그대로 입은 채 냉장고 앞으로 간다.
냉장고 앞에 있는 네모난 작은 문을 너울이는 ‘냉장고 창문’이라고 부른다.
딸각—.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 시원한 공기가 창문 안에서 흘러나오고, 주황빛이 켜진다.
마치 마법 냉장고 성의 창문이 열린 것 같다.
그 안엔 밤새 냉장고 요정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너울이는 아주 잠깐 생각한다.
델몬트 유리병을 두 손으로 잡고 꺼내, 유리잔에 천천히 따른다.
유리병에 들어 있는 보리차 물색은 언제 봐도 예쁘다.
어떨 땐 진하고, 어떨 땐 조금 연하다.
냉장고를 닫고 유리잔을 들여다본다.
어느새 유리잔 표면에 이슬들이 맺혀, 컵을 통해 보이는 보리차 색이 뿌옇게 보인다.
유난히 더 시원해 보인다.
티비를 켠다.
대나무 깔개가 놓인, 오래되었지만 튼튼한 가죽 소파에 아주 조심스럽게 앉는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가죽 소파가 여름에 살에 붙는 게 싫어서 시원하게 대나무 깔개를 놓은 거라고 하지만,
너울이는 가끔 방심하다가 허벅지 살이 대나무 깔개에 껴서 아플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여기 앉지 말라고 꼬집는 것 같다.
어른들은 안 꼬집고 아이들만 꼬집는 대나무 깔개가 너무 싫다.
‘이딴 게 뭐 좋다고…’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고, 너울이는 생각한다.
리모컨 전원을 켜자마자 볼륨을 재빠르게 낮춘다.
엄마가 티비 소리에 잠에서 깨면 너울이의 이 자유 시간이 사라질 테니까.
물론, 오랜만에 아침에 늦잠 자는 엄마를 깨우고 싶지 않은 4학년의 배려도
리모컨 볼륨을 낮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너울이는 지금 이 시간이 심장이 쿵쾅쿵쾅, 스릴 넘치고 재미있다.
만화 채널을 찾기 위해 빠르게 채널을 넘긴다.
‘방학인 걸 티비도 아는 걸까?
아니면 내가 학교 간 사이, 원래 오전에 만화를 이 시간에 하고 있었던 걸까?
찾았다!’
눈빛은 반짝였고, 너울이는 티비 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너울아, 일어나자마자 티비야?”
“본 지 얼마 안 됐어요! 엄마 일어났네~!”
“소리를 그렇게 작게 하고 보면 재미있어? 들리기는 해?”
“엄마 깰까 봐 그랬지.”
“말이라도 못 하면~ 방학인데 그래, 좀 봐도 되는데 눈 좀 깜박이면서 봐. 눈알 튀어나오겠다.”
“키키키키키~ 네!”
그제서야 너울이는 킥킥 소리 내며 웃으면서 만화를 마음 놓고 본다.
‘그렇게 좋을까?’
티비를 보며 웃고 있는 너울이를 보면서, 엄마는 미소 짓는다.
엄마는 긴 머리를 빙빙 돌려 큰 대왕 집게삔으로 한 움큼 찝어 단정한 머리를 만들고 부엌에 들어간다.
“너울이 뭐 먹을래?”
“아무거나요. 크크크크크.”
“아무거나라… 아무거나… 아무거나가 더 어렵다구!”
엄마는 냉장고 문을 열기 전, 마치 냉장고 속을 들여다보듯 잠시 멈췄다가
무언갈 결심한 듯 냉장고 문을 빠르게 열고, 빛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유부초밥과 김치를 꺼낸다.
부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엄마의 뒷모습은 만화 속에 나오는 닌자보다 조용하고 빠르다.
만화 속 주인공이 무림의 고수라면, 엄마는 부엌 고수다.
간단하게 유부초밥 3개와 김치를 달달 볶아 예쁜 접시에 담고, 사과도 세 조각 잘라 올려둔다.
작은 유리컵엔 시원한 보리차를 따라주었다.
꽃무늬 쟁반에 담아 거실 탁자 위에 놓아준다.
“밥 먹으면서 봐.”
“우와, 엄마 최고!”
너울이는 유부초밥을 좋아한다.
“오늘만 티비 보면서 아침 먹어. 내일부터는 안 된다!”
“넵! 잘 먹겠습니다!”
방학은 너무 좋다.
안되던 것들이 ‘오늘만 된다’는 날이 된다.
너울이는 유부초밥 위에 볶은 김치를 올려 한 입, 야무지게 베어 문다.
꿀맛이다.
그런 너울이를 보며, 엄마는 남은 사과를 잘라 접시에 담아 식탁에 앉는다.
식탁 위에 있는 잡지책을 넘기며 엄마는 생각한다.
‘오늘부터 삼시세끼, 뭘 먹여야 하나…’
여름방학을 좋아하는 너울이는
‘엄마도 방학이라 좋지?’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는 방학이구나.
나는 개학이란다.’
그래도, 너울이도 엄마도
지금 이 시간만큼은 굿모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