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곤충채집
소낙비 소식은 헛소문이었나 보다. 어제보다 더 덥다.
엄마는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며 더위를 달래고, 너울이는 선풍기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입에 먼지 들어가!”
“엄마, 이거 봐봐~ 나 말하는 거 외계인 같지? ㅋㅋㅋㅋ”
무더운 여름, 엄마는 냉커피 한 잔 마시는 게 낙이다.
달달하고 시원한 커피가 엄마의 더위를 달래준다.
띵—동.
인터폰 화면엔 눈썹, 눈, 코까지만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너울이와 엄마는 화면을 보고 서로 마주보았다.
“누구지? 누구세요~?” 엄마가 외쳤다.
잠시 조용하더니,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너울아~ 노올자~”
“너 아는 친구야?”
너울이는 처음엔 누군지 못 알아봤지만, 다시 보니 성빈이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타이밍을 못 맞춘 성빈이는 “너울아~” 하며 외치다가 눈이 마주쳤다.
“안녕? 너울아?”
“안녕?”
엄마는 성빈이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이름이 성빈이라고? 너울이한테 많이 들었어~”
“내가 언제?”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너울이가 대답했고, 엄마는 미묘한 눈빛과 0.0001초의 침묵으로 너울이를 나무랐다.
“오늘 정말 덥지? 거실에 앉아 있어. 아줌마가 마실 거 줄게.”
성빈이는 현관에서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거실에 앉았다.
집 안은 깔끔했고, 화분들이 보였다.
엄마는 하얀 빨대가 꽂힌 요구르트를 너울이와 성빈이 앞에 하나씩 놓아주었다.
뜻밖의 방문에 엄마는 평소보다 훨씬 친절한 어른이 되었다.
“최성빈, 너 진짜 우리 집에 왔네?”
“응. 온다고 했잖아. 나 여기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어. 아는 사람이 너밖에 없어. 방학이 너무 길지 않아? TV도 이젠 볼 게 없어.”
“맞아. 나도 TV 채널 너무 많이 봐서 재미없더라. 계속 재방송만 해.”
“맞아 맞아. TV 자꾸 본다고 엄마한테 혼났어. 너희 엄마는 우리 엄마랑 다르네~”
“아니야, 지금 약간 다른 사람 된 거야. 쉿!”
둘은 소곤소곤 웃으며 속삭였다.
“너 방학 숙제 하고 있어?”
“아니.”
“나 곤충채집 숙제 못할 것 같아. 곤충 너무 무서워.”
“방학 숙제에 곤충 채집이 있었어?”
“나 정말 곤충 못 잡아.”
성빈이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나 얼마 전에 아빠가 곤충채집통이랑 잠자리채 사다 주셨어. 우리 집에 있는데 같이 가서 가져올래? 내가 도와줄게!”
망설이는 너울이를 보며 다시 말했다.
“괜찮아. 내가 다 잡아준다니까.”
그의 눈은 까무잡잡한 얼굴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나도 문방구에서 하나 사야겠다. 곤충채집통이랑 잠자리채!”
너울이는 결심한 듯 요구르트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엄마, 문방구 가게 용돈 좀 주세요!”
엄마는 이미 대화를 다 들은 듯,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셨다.
“잘 사고 잔돈 받고, 잔돈으로 둘이 아이스크림 사 먹어!”
“엄마, 나 이제 잔돈 잘 받아!”
“감사합니다.” 뒤에서 성빈이가 인사했다.
“그래, 조심히 다녀와.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 잘 가렴, 성빈아.”
“안녕히 계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 둘은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를 보았다.
“저거 봐, 신기하지?”
“계란 올려두면 익을까?”
“빨리 가자!”
너울이는 긴장한 얼굴로 성빈이 뒤를 따랐다.
성빈이 집 앞에 도착하자 그가 말했다.
“금방 갖고 나올게!”
잠시 후, 성빈이는 파란 곤충채집통과 잠자리채 두 개를 들고 나왔다.
“이건 내 거고, 이건 너 줄게!”
“어? 고마워!”
“채집통은 문방구 가서 하나 더 사자!”
둘은 문방구로 향했고, 너울이는 빨간 곤충채집통과 잠자리채를 들고 성빈이 옆에 섰다.
“이제 어디로 가?”
“놀이터 뒤쪽 풀숲! 거기 여치 많아.”
잔디를 밟자 풀숲에서 무언가 폴짝 뛰어다녔다.
너울이는 잠자리채를 휘둘렀다.
“오! 나 뭐 잡은 것 같아! 이제 어떡하지?”
“기다려봐, 내가 잡아줄게.”
성빈이는 능숙하게 채 안에 손을 넣었다.
“여치다!”
“오… 징그러!”
“네 채집통에 넣어줄게.”
“오, 나 진짜 받는 거야?”
너울이는 징그러웠지만 기뻤다.
빨간 채집통 안의 여치는 작고 귀여웠지만, 만질 순 없었다.
그저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다.
“너울아, 이리로 와 봐.”
“왜? 뭐 있어?”
“이거 봐봐.”
“이게 뭐야?”
“매미 껍질이야.”
“윽… 징그러워.”
“귀한 거야. 이것도 너 가져.”
“다 나 줘도 되는 거야?”
“응.”
그렇게 너울이의 채집통은 점점 채워졌고, 하늘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우리 이제 가자. 벌써 노을이 지고 있어.”
“시간 진짜 빠르다.”
“오늘 진짜 재밌었어! 와~ 나 곤충 부자 된 것 같아! 너도 좀 가져!”
“난 괜찮아. 너 해.”
“그래? 정말이지? 고마워.”
빨간 곤충채집통은 가득 찼고, 파란 채집통은 텅 비었지만 성빈이의 마음은 가득했다.
둘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집으로 향했다.
“뭐어! 핀셋!? 그럼 얘들 죽어? 죽여서 가져가야 해?”
“그럼 어떻게 가져가겠어?”
“아… 그건 좀 곤란한데.”
“괜찮아. 다들 그렇게 해서 가져가.”
너울이는 충격을 받았다.
안방에서 나와 곤충채집통을 빤히 바라본다.
잠자리채 아래 작게 붙어 있는 곤충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진짜 곤충이었다. 살아 있었다.
살아 있던 거였다.
“미… 미안해. 흐어어어어엉~”
너울이의 울음소리에
엄마 아빠는 너울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왜 울어?”
“난 얘들 죽일 수 없어….”
아빠는 잠시 멈칫했다.
곧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얘들도 힘이 다 빠져서 어차피 죽을 거야.”
“여보, 그게 아니잖아.”
엄마가 아빠 팔을 툭툭 친다.
“너울이가 속상하면 그렇게 안 해도 괜찮아.
곤충 채집 숙제도 중요하지만,
너울이 마음이 더 중요해.”
“흐엉어어어어…
숙제도 잘하고 싶고,
얘들도 죽일 순 없어.”
행복했던 하루가
슬픔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선풍기는 조용히
턱, 턱, 턱
방향을 바꾸며 돌아간다.
엄마와 아빠는
너울이의 등을 토닥이며 곁에 앉았다.
너울이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한여름,
너울이네 집의 불이 하나씩 꺼지고,
집 안은 금세 조용해졌다.
그런데 너울이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다.
깜깜한 방,
선풍기 소리만 돌아다닌다.
너울이는 눈을 떴다.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창밖을 내다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왜 이런 걸 숙제로 낸 걸까….
거실로 나온 너울이는
베란다 불을 켰다.
주황빛 불이
조용한 밤을 비춘다.
채집통 안 아이들은
처음보다 훨씬 더 움직임이 없다.
너울이는 채집통을 들고
화분이 놓인 철제 선반 위로 올라간다.
잠시 숨을 고르고,
뚜껑을 살짝 연다.
바람이 불어와
투명한 채집통 뚜껑이 흔들렸다.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미안해.”
너울이는 조용히
채집통 곁에 앉았다.
깜깜한 여름밤,
베란다 위로
작은 날갯짓 하나라도
들려오길 바라면서.
다음 날 아침,
베란다 밖 선반 위에 놓인 채집통은 조용히 비워져 있었다.
그리고 오후,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울아, 노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