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엄마
아침이다. 너울이는 아침을 좋아한다.
언제나 일어나면 방학이다. 그래서 더 좋다.
‘매일매일 방학이었음 좋겠다.’
이제 다음 주면 개학이다.
아쉬운 이 방학의 아침을, 침대 이불 속에서 온전히 더 즐기고 있는 너울이다.
“일어나, 김너울!”
이불 끝자락을 잡고 힘껏 당기며 엄마가 너울이를 깨운다.
이불에 돌돌 감겨 있던 너울이는 떼굴떼굴 구른다.
재미있다고 까르르 웃는 너울이는 한 번 더 해달라고 한다.
“애기야? 일어나. 이제 다 큰 어린이잖아. 다음 주면 개학인데, 방학 숙제는 다 했어?”
“다 했지! 이번 탐구생활은 내가 우리 반에서 1등할 거야! 곤충 채집도 내가 해결했어!”
“해결했다고? 어떻게?”
“아빠가 곤충 핀으로 꽂으려던 액자 있지? 거기에 내가 도화지에 곤충을 그려서 색칠하고, 아래에 이름을 적었어. 보여줄까?”
“오, 그런 방법이 있었네. 보여줘!”
너울이는 으쓱하며 책장에 꽂혀 있던 액자를 엄마에게 내민다.
“그림자도 넣었네? 진짜 같다, 너울아!”
“진짜 곤충은 아니지만, 그래도 곤충 채집은 진짜로 했으니까!!!”
“잘했어. 우리 너울이, 방학 때 많이 큰 것 같네!”
“원래 컸거든!”
엄마는 웃으며 너울이 배를 간지럽힌다.
너울이는 간지럽다고 깔깔 웃어댄다.
너울이의 아침은 오늘도 굿모닝이다.
엄마랑 너울이는 아침을 간단히 먹고, TV 앞에 앉았다.
너울이는 소파에 반쯤 누워 있고, 엄마는 소파에 앉지 않고 항상 소파와 탁자 사이 바닥에 앉는다.
“엄마, 나 화채 먹고 싶어.”
“화채?”
“응.”
“수박이 집에 있긴 한데, 같이 화채 만들까?”
“응! 내가 TV에서 봤는데, 사이다나 밀키스를 넣기도 한대.”
“사이다나 밀키스는 없어. 우유를 넣자.”
냉장고에서 큰 반찬통에 네모 반듯하게 잘라둔 수박과 우유, 얼음을 꺼냈다.
큰 유리 그릇에 수박과 우유, 얼음을 넣었다.
엄마는 아빠가 맥주 안주 살 때 사둔 오징어와 후르츠 칵테일 캔이 생각났다.
캔을 조심스럽게 따고 화채 그릇에 넣었다.
너울이는 숟가락으로 휘저으며 섞었다.
맛을 보니 뭔가 맛이 없었다.
“엄마, 내가 생각한 맛이 아니야…”
엄마도 한 숟갈 먹어보더니 마법의 흰 가루를 넣었다.
“설탕?”
“응. 단맛이 더 있으면 좋겠네. 너울이가 말한 대로 밀키스 있었어도 맛있었겠다.”
“밖은 너무 더우니까 그냥 이렇게 먹자. 슈퍼 다녀오다가 쓰러질 수도 있잖아!”
“그래,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
너울이와 엄마는 까르르 웃으며 먹는다.
이럴 땐 정말 서로 닮은 모녀다.
맛나게 화채를 한 입, 두 입 먹으면서
엄마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보고,
너울이는 그런 엄마를 본다.
“엄마, 내가 지금까지 한 숙제 보여줄까?”
“그래, 가져와 봐.”
방에서 탐구생활 책을 들고 나오는 너울이는 벌써 신이 났다.
책이 두꺼워져 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엄마와 함께 숙제한 것들을 보았다.
“너울아, 너무 열심히 해서 책이 안 덮힌다.”
방학 계획표도 꼼꼼히 색칠돼 있고,
가족을 소개하는 페이지엔 그림과 사진까지 붙어 있다.
“사진 써도 되냐고 하더니, 여기에다 붙이는 거였구나!”
“응!”
과학 실험 보고서, 박물관 견학서도 붙여 있고, 독후감도 붙여 있었다.
곤충 채집 액자와 연필꽂이까지!
“너울아, 정말 잘했어! 엄마가 선생님이라면 너울이 숙제가 제일 잘했다고 할 것 같아!
방학 계획표 보니까 일기 쓰기도 적혀 있던데, 일기는 어디 있어?”
“일기? … 아, 맞다!!!!”
엄마는 너울이를 바라본다.
“엄마, 나 어떡해? 일기 쓰기를 완전 까먹었어! 나 한 번도 안 썼어!”
너울이 얼굴은 시뻘개지고, 숨이 차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까먹었던 거다.
“까먹었다고? 아니, 까먹을 게 따로 있지! 방학 숙제 하면 일기! 일기 하면 방학 숙제 아니야?”
안 그래도 속상한 너울이에게, 엄마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울먹이던 너울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미워!”
너울이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그런 너울이의 반응에 당황했다.
“누가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거야? 자기가 잘못해 놓고…”
닫힌 방문 앞에서, 엄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방 안에선 너울이의 울음소리만 들린다.
⸻
똑똑똑—
“너울아? 문 열어봐.”
“너울아?”
울음소리는 멈췄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는다.
엄마는 너울이가 걱정되기도 했고, 자신이 한 말이 미안하기도 했다.
이미 속상해하는 아이에게 핀잔을 줬으니.
“엄마 밖에 잠깐 다녀올게.”
역시 대답 없는 너울이다.
달칵—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거실은 조용하다.
너울이는 살짝 방문을 열고 얼굴만 내밀어 엄마가 정말 나갔는지 확인한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너울이는 급하게 어디론가 간다. 화장실이다.
엄마에게 삐져서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너울이는
수박 화채 덕분에 화장실을 참고 있었다.
시원하게 해결한 너울이는 화장실을 나오면서,
거실에 놓여 있는 탐구생활 책을 보았다.
“어떻게 일기를 까먹고 있었지…? 어떻게 다 쓰지?”
한참을 울어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찬장에 있는 초코파이 하나를 꺼내서 접시에 담았다.
칼을 꺼내 조심스럽게 조각조각 잘랐다.
너울이 엄마는 매번 초코파이를 이렇게 잘라서 너울이에게 포크랑 같이 준다.
너울이는 항상 그랬듯이 포크로 잘라진 초코파이를 콕 찍어 한 입 먹는다.
‘맛있다.’
빙그레 웃는 너울이다.
그때, 현관문이 열린다.
너울이는 허겁지겁 먹다가 엄마랑 눈이 마주친다.
“방에서 나왔네.”
“다시 들어갈 거야!”
“그러지 말고, 여기 앉아봐. 엄마가 아까 그렇게 이야기해서 미안해.
너울이가 일기를 깜빡했다고 해서, 엄마도 그만 그런 말을 해버렸어.”
“내가 제일 놀랐고, 내가 제일 속상하다구!
그리고 일기는 나만 쓸 수 있는데 기억도 안 나고…”
너울이는 속상했던 마음들을 입 밖으로 쏟아냈다.
엄마가 안아주었다.
“알아.”
엄마는 너울이에게 ‘일기장’이라고 적힌 공책 한 권을 내밀었다.
“방학식 하는 날부터 해서, 엄마랑 이야기하면서 기억해 내 보자.
날씨는 베란다에 모아둔 신문지 찾아보면 되고. 대신에, 다음엔 일기 매일매일 쓰는 습관! 알지?”
“네.”
너울이는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