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일기장
거실 탁자 위에는 연필, 지우개, 일기장이 놓여 있다.
엄마랑 나랑 거실 탁자에 마주 앉았다.
엄마는 신문지에 적혀 있는 날짜와 날씨를 너울이에게 말해주고,
너울이는 날짜와 날씨부터 차례대로 적었다.
엄마와 너울이의 ‘공동 일기 벼락치기 대작전’이 시작되었다.
방학식 날, 탐구생활 숙제를 받고 정말 잘하고 싶었던 마음을 적었다.
그다음 날은 엄마랑 같이 늦잠 자고, TV도 마음껏 본 걸 적었고,
주말에는 아빠랑 엄마랑 박물관에 갔다가
맛있는 삼계탕도 먹은 일을 빠짐없이 적었다.
중간중간 기억이 나지 않는 날은
그냥 집에서 책을 읽었다고 적었다.
손가락이 아파 왔다. 하지만 너울이는 멈출 수 없었다.
기억이 달아날까 봐, 손가락이 아파도 참고 적었다.
엄마는 그동안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도 개며
거실을 오가다 너울이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나는 날부터 적어! 성빈이 우리 집에 처음 와서 곤충 채집한 일도 있잖아.”
“맞아! 엄청 재미있었어. 잠자리들도 잡았는데,
얘들은 앞으로 곧장 오듯 하다가 옆으로 슝 가고,
진짜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겠더라니까!”
“그래, 그런 것들 적으면 되겠다!”
너울이는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열심히 적었다.
핀셋으로 곤충을 차마 찌르지 못해서 그림을 그리게 된 이야기.
솔직하게 적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참외를 깎아 너울이 옆에 조심스럽게 놓아주었다.
“먹으면서 해.”
“참외다! 엄마, 씨는? 씨가 있어야지 맛있지!”
“설사한다.”
“칫, 다른 엄마들은 씨도 준다던데.”
“그럼 다른 집 가서 살 거야? 엄마는 너울이 없으면 못 사는데.”
“그런 말이 아니잖아~”
“주는 대로 감사합니다 하고 먹어~”
“감사합니다~”
너울이는 참외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물었다.
입안에서 퍼지는 시원한 단맛이 글씨보다 먼저 방학을 떠올리게 했다.
성빈이랑 지점토로 연필꽂이를 만들었던 일,
곤충을 다 풀어주게 되어 미안했다고 말했던 순간도 적었다.
생각해보니, 방학 동안 성빈이랑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성빈이가 놀러 오지 않는다.
분명 밀린 방학 숙제를 하느라 바쁠 거다.
잠깐, 성빈이가 궁금해졌다.
성빈이 집에는 강아지가 있다.
이름은 손오공. 다음엔 꼭 보여달라고 해야지.
너울이는 일기를 쓰며 지난 방학생활을 다시 떠올리고,
그걸 글로 다듬는 일이 기분 좋았다.
물론 손가락이 아픈 것만 빼면 말이다.
오늘은 엄마랑 화채를 만들어 먹었던 이야기도 썼다.
하지만 일기 숙제를 까먹고 지금 벼락치기하고 있다는 건,
차마 쓸 수 없었다.
그건 엄마와 너울이만의 영원한 비밀이었다.
“아, 나머지는 내일 써야겠다~ 몰라 몰라몰라~”
너울이는 쇼파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엄마는 그런 너울이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다 갠 빨래를 정리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일기는 말이야. 매일 써야 하는 거야~
이거 봐, 내 손가락 흐물흐물거리는 거~ 보이지? 엄마 보고 있어?”
“그걸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네. 다 컸네, 김너울~”
“양손잡이면 좋겠다. 그럼 하루에 이틀씩 쓰면 금방일 텐데.”
“철들려면 멀었네. 다 컸다는 말 취소!”
엄마도 어릴 적, 밀린 숙제를 하며 저 말을 했던 게 떠올랐다.
참, 너울이는 분명 엄마 딸이 맞았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는 피식 웃었다.
거실은 어느새 빨간 노을빛이 창가를 물들이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연필과 지우개, 일기장, 먹다 만 참외가 반쯤 남아 있다.
너울이는 숙제를 끝냈고,
엄마도 빨래를 다 개었다.
둘은 나란히 거실 바닥에 누웠다.
여름방학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