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라방-라이브방송

라방종료#05

by 제난희



지이잉—

서영은 또다시 울리는 알람을 눌렀다.

익숙한 라방, 익숙한 판매자, 익숙한 아이디들.

사람들은 반가움에 채팅을 쏟아냈다.


– 오늘 라방하는 날이었어요? 피드 못 봤는데?


그런데 판매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언니들, 좀 더 들어오시면 이야기하고 시작할게요~ 급방이에요!”


그렇게 인원수는 순식간에 늘어났고,

판매자는 얼마 되지 않아 하소연을 시작했다.


“거파가 너무 많아서요.

사무실 재고가 많아서 급하게 라방 켰어요.”


표정이 죽상이다.


– 거파가 뭐예요?

– 거파 좀 하지 마세요!

– 거파할 거면 왜 산 거래요? 남들 못 사게!!!

– 거파는 거래 파기예요.


채팅창은 바쁘게 올라갔다.


– 거파 뭐 있어요?

– 언니, 스겜해줘요! 사람들 더 들어오기 전에!!

– 사장님, 시작해주세요!


이 방의 공기의 흐름은 누군가를 위한 분노를 표출하는 곳이 되었고,

그것은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누군지도 모를 대상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은 분노라는 감정 뒤에 숨어

그것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모두들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궁금해했고,

재미있어 했다.

즐기고 있었다.


“언니들, 거래 파기된 상품은 사무실 재고가 되기 때문에

제발 필요한 분만 주문 넣어주세요!


재고 가격으로 얼마 전에 한 라방 상품도

오늘 저렴하게 드릴 테니, 많이 사주세요!


포장한 걸 바로 풀어야 해서 스팀 못하는 거 감안해서 봐주세요.

하나씩밖에 없어요!”


판매자는 실시간으로 택배 비닐을 뜯어

상품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품인데도

채팅창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서영은 보고만 있었다.

과연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일까?


익숙한 옷들이 연달아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의 택배 봉투였는지

순간 스쳐가는 이름 하나.


‘설마, 전혜성?’


서영이 생각을 한 동시에

누군가가 이미 채팅에 글을 올렸다.


– 이거 혜성님이 샀던 거 아니에요?

– 와, 맞네. 나 그날 하나도 못 샀는데!


전혜성.

그녀가 라방에 나타난 날의 주문서에

항상 최다 구매자였던 그녀의 이름은

모두의 사냥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판매자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항상 최다 구매자셨는데,

아이디를 삭제하고 잠수 타셨어요.


이름을 언급하기엔 좀 그러니까

그냥 누군지만 서로 짐작하자고요.”


그렇게 쉴 새 없던 채팅창이 멈췄다.

인터넷이 멈춘 줄 알았다.


그 고요함을 깬 건

다음 상품이었다.


그렇게 그날도 라방은 완판으로 끝났다.

전혜성이 사지 않아도,

그녀의 존재는 금세 다른 이들로 채워졌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서영은 자주 들어가지 않는 라방 채널들을 정리하고

알람을 껐다.


지우지는 못했지만, 줄일 수는 있었다.

알람 소리로 바쁘던 서영의 핸드폰이

오랜만에 조용하게 잠들어 있었다.


서영은 그날 반차를 쓰고

오전에 밀린 집안일을 하며 집을 둘러보았다.


드레스룸 행거가 무너지고,

서랍장 위에 옷더미가 쌓여 있었다.


‘서랍장을 하나 더 살까?’

잠깐 고민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서랍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옷을 그만 사야 하는 거였다.


그녀는 계절이 지나고 작아진 아이 옷부터,

오랫동안 입지도 않은 자신의 옷들도 꺼내

잔뜩 정리했다.


끝도 없이 널브러져 있는 옷들이

마치 자기 같아 보였고,


마주하기 싫은 모습을 바라보던 서영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서영이 알던 집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서영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알람은 오지 않았지만,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라방에 입장해버렸다.


그녀는 인사도, 주문도 하지 않고

그냥 켜두기만 했다.


익숙한 창고,

판매자와 상품들,

채팅창 모두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서영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상품을 보고

손가락이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지웠다.


‘이건 주문했어야 했나…?’


두어 시간이 지나

라방은 종료되었다.


종방 이후,

지나간 상품에 대한 아쉬움이 클 줄 알았는데—


라방이 끝난 것처럼,

자신의 도파민도 끝났다.


옷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녀는 여전히 라방에 입장했다.

세수할 때도, 설거지할 때도 틀어놓았다.


하지만 이제

손가락은 더 이상 채팅창을 두드리지 않았다.

이어폰도 끼지 않았다.


누군가 인사를 건네도,

반응하지 않았다.


판매자의 목소리는 여전했고,

채팅은 여전히 빠르게 올라갔지만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소음처럼 느껴졌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눕혀야 했던 밤.

아이들의 이야기를 흘려들었던 저녁.

남편과의 육퇴 후 데이트.


그 모든 것을

손바닥 속 화면에 있는 사람들과

바꾸어 온 것이었다.


명목이 있어 시작했던 쇼핑은

단순한 구매 수단이 아니었다.


그날 밤,

서영은 핸드폰을 뒤집어 두고

아이들 방에 들어갔다.


은은한 수면등만 켜진 방엔

새근새근 숨소리와

아이들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아이들 곁에 앉았다.


통통한 볼,

침대 위에 널브러진 인형들,

발로 걷어찬 이불들.


매일 있었던 것들이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본 건

참 오랜만이었다.


몇 달 사이,

이 아이들은 얼마나 자란 걸까.


얼마나 많은 밤을

이 얼굴들을 덜 바라본 걸까.


그날 밤,

라방은 켜지지 않았다.


그녀도,

그녀의 핸드폰도

아이들과 함께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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