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2편) 39년 1개월간의 공직 생활을 끝내다

실장은 무게로 말한다

by 황희종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하던 시간은 제 공직 생활에서 가장 무거운 시기였습니다.
그 자리는 단순히 직급의 정점이 아니라, 국방부 전체를 하나의 방향으로 조율해야 하는 책임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보다, 무엇을 선택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늘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 판단이 과연 조직을 위한 것인지,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인지를 말입니다.


기획조정실장은 지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말 한마디의 무게로 조직을 설득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많이 듣고, 더 천천히 판단하려 애썼습니다. 회의실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더 많았고, 서류보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했습니다.


그 시절 가장 치열했던 기억 가운데 하나는 사드 배치 문제였습니다.

국가 안보라는 명분과 지역 주민들의 삶이 정면으로 충돌하던 현장이었습니다. 총리와 장관이 내려가도 대화조차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저는 더 이상 책상 뒤에 머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직접 성주로 내려가 주민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욕설과 야유가 쏟아지는 현장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설득보다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누군가의 분노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었고, 그 불안의 밑바닥에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정부의 입장을 앞세우기보다, 그들의 말을 끝까지 듣는 데 집중했습니다. 주민들이 제시한 사드 배치 장소를 정부가 수용하면서 성주에서의 갈등은 마침내 풀려나갔습니다. 그 과정은 제게 리더십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김천에서의 시간도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문전박대를 당했고, 집회 현장에서 제 이름이 구호가 되어 울려 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사람을 찾아갔고, 막걸리 한 잔을 앞에 두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갈등이라는 것이 반드시 힘으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 때 비로소 풀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2016년, 그 무더웠던 여름을 저는 성주와 김천의 갈등 현장에서 보내고 사무실로 복귀했습니다.


기획조정실장은 국방부의 예산과 조직, 제도와 정책, 그리고 국민과의 관계까지 모두 조율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는 결코 명예로운 직함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늘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이 결정이 조직을 살리는 선택인지, 후배들을 보호하는 판단인지, 그리고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인지를 말입니다.


2016년 말, 일반직 공무원의 인사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퇴직을 하고 모 공제회 감사로 가기로 했던 국장이 약속을 어기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후배들에게 돌아갈 상황이었습니다. 인사는 막혔고, 조직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강제로 내보낼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이 문제를 그대로 두면 가장 큰 피해는 아무 잘못 없는 후배들이 떠안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 문제는 가장 책임 있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장관과 차관을 설득했고, 결국 제 스스로 물러나는 선택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지만, 제 마음은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이미 저는 공직에서 충분한 기회를 받았고, 이제는 그 자리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이 마지막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제 후임으로, 약속을 번복했던 그 국장을 추천했습니다. 개인의 감정보다 조직의 안정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사 검증 과정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것이 공직자로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자세라고 믿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기획조정실장으로서의 시간은 고단했습니다.
끊임없는 갈등과 조정, 설득의 연속이었고, 때로는 오해와 비난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저는 공직의 본질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직은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뒤로 물러나는 용기를 요구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7급으로 시작해 39년 1개월을 걸어온 공직의 길.
그렇게 저는 공직이라는 긴 여정을, 2년 5개월을 남겨두고 조용하지만 책임 있게 마무리하였습니다.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정든 국방부를 떠났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참으로 평온했습니다. 누군가의 길을 막지 않았고, 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마지막 문을 닫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돌아보면, 공직의 끝자락에서 제가 배운 가장 큰 가치는 분명합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더 오래 머무는 데 있지 않고, 가장 적절한 순간에 내려놓는 데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내려놓음이 또 다른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믿음 하나로, 저는 오늘 제 공직의 마지막 페이지를 조용히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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