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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현 Sep 29. 2024

B15층. <다가올 미래를 위해>

꿈을 꿀 것인가. 꿈을 이룰 것인가.

<미래>
1. 앞으로 올 때.
2. 발화(發話) 순간이나 일정한 기준적 시간보다 나중에 오는 행동, 상태 따위를 나타내는 시제(時制).


과거에 나는 수없이 많은 꿈들을 갖고 있었다.


어렸을 때, 고모가 주신 만화책 삼국지 60권 분량의 책을 정독하고 나서부터는 그곳에 나온 인물 중에서 촉나라의 책사 제갈공명에 감명을 많이 받았다. 책사라는 직업은 없기에... (물론, 군사작전 관련이나 외교부 쪽을 생각해 보긴 했지만)

제갈공명이 밤마다 검은 밤하늘에 뜬 별들을 보며, 위인의 죽음이나 다음 날의 날씨를 맞추는 것을 보고 천문 관련 일인 기상관측연구원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좀 더 자라서는 한창 '셜록 홈스'라는 책에 빠졌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장래희망을 적어오라는 숙제에 떡하니 '탐정'이라는 직업을 써서 제출했다. 그걸 읽으신 담임선생님께서는 반 친구들 앞에서 내 직업을 발표하게 시키셨다. 그때는 탐정이라는 직업이 왜 이렇게 멋져 보였을까. 나는 반 아이들에게 우리 반에서도 사건이 일어나면 모든 실마리를 파헤쳐 해결하겠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났다. 반 아이들은 박수로 보답해 줬다.


반 친구들 앞에서 자신감 넘치게 말했던 그날의 기억이 흐릿해지지 않는다. 발표 후, 담임선생님께서는 탐정이라는 직업은 현재 없으니 과학수사대나 CSI 같은 것을 해보는 게 좋겠다고 추천도 해주셨다. (*찾아보니 현재는 탐정수사대나 흥신소 쪽이 탐정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장래희망은 희망일 뿐이었을까?


더 크고 나서, 중학생 때는 한창 '원. 나. 블.'이라 불리는 일본 최고의 인기 만화 세 작품을 모두 보다가, '원피스'라는 만화에 나오는 조로라는 검객을 보고 또 빠져들었다. 검을 사달라며 부모님께 때를 썼지만, 항상 거절을 당했다. 그렇게 검도를 배워 최고의 검도선수가 될 뻔했지만 또 희망으로 남겨졌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더 이상의 장래희망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누구나 가야 한다는 대학교 진학을 위해 희망 없는 목표 앞에 적당한 점수를 얻기 위한 공부를 했다. 아! 그때 당시에는 장래희망보다는 오히려 희망학교를 적는데 열중했던 걸로 기억한다. 고3 때, 3월 달에 본 첫 모의고사의 성적이 생각보다 좋게 나왔다.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인서울에 유명한 학교들을 가고 싶다고 얘기를 하니, 조금 더 노력하면 충분히 갈 것 같다는 기대감을 주셨다.

그 뒤로는 남들과 같은 노력을 했고 뜨겁도록 매운 불수능에 지짐이를 당했다. 그렇게 남들과 같은 노력으로는 세상 앞에서 큰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희망 학교들은 성적이 모자라 쓸 수 없었지만 성적에 맞춰 간 대학교 덕분에 인서울이라는 목표는 이룰 수 있었다.


대학교 시절은 또 어떠한가.

꿈이 있었을까? 아니다. 없었다.

시험 점수에 맞춰 온 모대학교의 기계과.

나는 이론만 빠듯하고 기계치인 기계과 학생으로 4년을 보내게 된다. 지금도 처음 만지는 기계는 누구보다 더 못 다룬다. 고장이라도 내지 않는 게 다행이다. 아마 2차 산업혁명에 태어나 돈을 벌어오라고 시켰다면, 아마 기계를 못 다뤄 쫓겨나서 1차 산업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앞서 본 장래희망들과 교육의 이면에 가려져 사라진 꿈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다.

더 나아가면, 더 암울해질 수 있겠지만...

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나는 대학교 진학을 하면 거의 대부분이 받는 졸업장을 받는다. 그리고 바로 취업을 못해 현재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겪는 백수생활을 겪었다. 그리고 얼어붙은 취업 시장을 뒤로하고 가족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그 후, 남들이 하는 연애를 하다가 나이에 맞춰 결혼을 하고, 집을 마련해 가정을 꾸리다가.. 요새 유행인지 한 번은 겪을 수 있다는 경험을 하고 가정이 없어졌다.


어쩌면 나의 삶은 그냥 물 흘러가듯이 '나는 누워있을게 흘러다오.' 하면서 세월과 운에 나를 맡겼던 것 같다. 물론 나름 원하던 목표가 있으면 그걸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큰 틀을 보자면 '물 흘러가는 듯.'이라는 마인드가 더 강했다고 본다. 그러다가 엄청 큰 파도를 만나 깊은 수심으로 잠겨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 나는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깊은 수심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리발 없어도 숨을 참고 수면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이 상황에선 제일 좋은 장래희망이었다. 숨을 쉬면 폐에 차는 물이 주는 고통과 압박을 어쩔 수 없이 견디며, 무거워진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들이킨 물들을 다시 뱉으며 처절한 수영을 계속했더랬다.


생각해 보면,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에 만족했기에 이런 일들이 나에게 닥쳤나 싶다.


다행인 건 '시간'이라는 모두가 갖고 있는 이 무기를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떠한 고통도 무뎌지게 만드는 시간이라는 아이템. 덕분에 현재의 내가 점점 단단해지고 있는 이유다.


나는 거기에 더해 미래를 위한 준비들을 계속하고 있다.

모두가 될까?라고 생각했던 그것들을 조심히, 그리고 천천히 하나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어떤 것은 뒤돌아보니 벌써 30프로나 완료했다. 이 프로젝트는 숫자 100을 100번 채우는 게 목표여서 눈에 보이는 목표이다. 시각화가 뚜렷하게 되니 다 하고 나면 엄청난 보람을 바로 느낄 수 있다.

또 어떤 목표는 일주일에 한 개씩 쌓여간다. 150이라는 숫자가 오면, 다음 레벨로 넘어갈 수 있는 목표가 풀린다.

이렇듯 여러 목표들을 뚜렷하게 설정해 나가니, 시간의 흐름에 내 몸을 맡겼던 과거의 나라는 사람은 이제는 시간의 흐름을 내 손으로 직접 흐르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간을 역행할 순 없지만, 시간을 갖고 놀 순 있다.


어떻게?

무뎌진 시간을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고 쪼개면, 정말 24시간이라는 이 시간이 엄청나게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날이 온다. 그걸 깨닫고 나면,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루 만에 다 할 수 있다는 것에 엄청난 쾌감을 느낀다. 이 쾌감을 느끼기 위해선 하고 싶은 것이나 목표들을 그만큼 쪼개서 이뤄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마치 대출을 한 뒤에 원리금균등상환을 하듯 말이다. 일부 잘게 쪼개진 목표라는 작은 원금을 지속적으로 계속 갚아나간다는 이치와 같다. 여기서 이자는 아마 나의 체력과 정신력일 테다.


단, 이 쪼개기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게으름이라는 무기를 장착하지 말 것>이다.

쪼개기 방식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하나의 톱니바퀴가 돌아가지만 수없이 많은 톱니바퀴들을 그 옆에 계속 꽂고 옆에 또 꽂다 보면,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하나의 삶을 지탱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톱니바퀴도 기계인지라 뻑뻑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게 바로 게으름이라는 악마 같은 놈이다. 기름칠을 해주기 위해 WD40을 뿌려줘야 하지만, 기름칠을 해도 스스로 다시 톱니바퀴를 돌리지 않으면 수많은 목표들과 해야 할 일들이 멈춰져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해 버리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바로 미래의 나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방법이다.

미래의 나는 무슨 죄인가. 주인을 잘못 만난 죄? 아니면 가만있다가 할 일을 뚜드려 맞은 죄?

모두 맞다. 그럼 다음 날이 되어 이 모든 일들을 맡게 된 현재의 나는, 하루를 안 돌려 더 뻑뻑해진 톱니바퀴를 잡아다 돌리는 데 더 많은 힘을 쓰게 된다.


사실, 미래를 준비하는 이 모든 과정이 쉬운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더 깊은 물속으로 빠져버리기 싫어서, 현실을 바꿔보고 싶어서, 지나간 삶을 후회하기 싫어서.

하다 보니 이런 규칙이 완성됐고, 하다 보니 또 나만의 규칙이 만들어졌다.

이런 나를 보는 지인들은 대단하다고 말하며 갓생을 산다고도 말해준다.


맞다. 갓생을 살고 싶어 이러한 노력들을 나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 생을 살리라는 보장도 없거니와, 내가 소설처럼 회귀를 한다든지 환생을 한다든지 확신이 없기에.

물 흐르듯 살던 나라는 캐릭터는 인생 1 회차라 생각하고 저 멀리 보내버렸다.


그렇게 현재의 나는 도피가 아닌 탈피를 시작한 것뿐이다.

그리고 인생 2회 차를 위한 탈피.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이렇게 톱니바퀴를 계속 달고 또 달면서 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

누가 보면 속도가 너무 빨라 바퀴에서 불꽃이 펑펑 튀는 폭주기관차 같다 할 것이다.


세상에 늦은 때는 없다고 많은 명언들이 말하지만,

세상에는 자기만의 속도가 있고 자기만의 때가 있다고도 말하지만,

나는 그 속도와 때를 가능하면 빠르게 이루고 더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다.


그렇게 다가올 미래를 위해... 나는 오늘을 나아간다.





최근에 들은 명언 중에 가장 와닿는 명언을 적어본다.


"당신이 죽기 전, 당신이 될 뻔했던 누군가를 만나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뜻: 내가 이루고자 했던 어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기 전, 그 꿈을 이룬 다른 사람을 SNS나 다른 매체를 통해 보게 된다면 죽는 순간에 하염없는 후회가 밀려올 것이다.


그때 해볼걸 -> 지금 하자.

좀 있다 할게 -> 지금 할게.

한숨만 자고 -> 하고 잘게.

이것 좀 하고 해 줄게 -> 이건 좀 있다 하고 그것부터 먼저 할게.

(위의 내용들은 내가 현재 장착한 아이템들이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미루지 말고 현재의 나를 이용해 끝내자. 인생의 과제는 차곡차곡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쌓이기 때문이다. 벅차다 생각하면 우리는 주저앉는 걸 선택할 것이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그럴 때는 다시 일어나서 달려라.

수많은 결승선을 통과하고 그다음 결승선을 통과하려고 또 뛰고 있는 허들 경주의 선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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