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당시의 나는 '어디 영화에서 나온 명언인가?'라는 의구심만 갖고 저 명언의 의미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있던 어느 날, 몇 년 동안 저 상태명을 유지하는 친구 덕분에 명언의 뜻을 찾아보게 되었다.
명언의 의미는 이렇다.
사람의 인생은 탄생 B (Birth)과죽음 D (Death) 사이에 선택 C (Choice)이라는 의미다.
나는 이 의미를 보자마자 '좀 더 빨리 이 문구를 알았더라면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주저하지 않고 시도를 해봤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를 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면서 나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항상 최상이 아니면 보통정도의 선택을 한 줄 알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한 선택에 후회 없이 살자.'던 굳건했던 마인드가 산산조각이 났던 날.
유리파편이 되어버린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이려던 나는 살갗을 베는 아픔을 견뎌야 했고,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시간에 쫓겨 제대로 된 치유를 받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 내 선택에 잘못이 있었던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질문을 낳았다.
내 선택에 대한 옳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노력했던 모든 것이 무산되는 순간. 어디든 붙잡고 싶은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디든 붙잡아야 D에 가까워지지 않았기에...
나는 저 문장을 보며 나만의 문구를 하나 작성한 적 있다.
저 문장의 뜻을 보고 나서 바로 생각난 문구를 핸드폰 노트어플에 바로 적어놓았었다.
이게 삶의 지침이자 나침반이 될 줄이야. 그때 당시에는 몰랐다.
그 노트 어플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내 주변사람들의 종류는 세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바로 < -1, 0 , +1>이다.
'-1을 주는 사람'은 나에게 항상 얻을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베풂이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0을 주는 사람'은 나와의 관계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사람들을 말한다.
'+1을 주는 사람'은 나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거나 항상 뭔가를 주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문득 기억하는 과거의 '그'라는 사람은 나에게 과연 0이나 +1의 사람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대답은 곧바로 나왔다.
'아니다.'
그때 당시에는 -1과 0 사이에 있는 그를 +1로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부단히 했다. 하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0으로 변할 것 같던 그는 결국 -1로 돌아섰다. (더 큰 마이너스로 갔을 수 있다. 내 정의에선 판단불가라 뜬다. 정의할 수 없기에.)
이렇듯 자신의 주변에 -1의 사람들이 많다면 나라는 사람의 평균점수가 계속 내려간다.
만약 내 지인들 중에서 +1의 사람들은 한 명도 없고, -1과 0 만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의 평균점수는 마이너스일 것이다. 그러면 결국 나는 마이너스인 사람이다.
반대로 지인들 중에 +1 인 사람들이 많다면, -1의 사람들이 주변에 어느 정도 있다 해도 +1이 더 많기 때문에 나는 평균점수가 플러스인 사람이 된다.
우리는 인생에서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그만큼 내가 선택하는 사람들에 따라 인생의 척도가 바뀐다. 이건 거짓이 아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지는 여러 드라마의 명대사들로도 알 수 있다. 그중, 미생의 한 대사를 가져와봤다. <드라마 미생>에서 오 차장은 신입직원 장그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 차장: 장그래! 파리와 어울리면 변소 주변이나 어슬렁대게 되고 꿀벌과 어울리면 꽃밭 주변을 가게 된다고.
오 차장이 있는 영업 3팀의 자리는 회사에서 화장실 앞이다. 하지만 오 차장과 부하직원들은 절대 파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꿀벌들을 만나며 서로가 서로의 꽃밭을 만들며 팀을 항상 위기에서 구해냈다.
오 차장의 저 말에 대한 장그래의 대답은 내게 깊은 미소를 띠게 해 줬다.
장그래: (웃으며) 아~ 그래서 제가 지금 꽃밭을 걷고 있나 봅니다.
그만큼 인생에서 나 자신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심각한 고민을 하는 오 차장에게 산뜻한 말을 전하는 장그래에 미소에 반할 뻔했다. 역시 사람은 말을 이쁘게 해야 사랑받는 것 같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들을 내 지인으로 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먼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
내가 +1이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도움을 주면 된다.
그러면 나와 비슷한 +1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계속 몰려올 거다.
이렇듯 나는 주변의 +1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평균점수가 플러스인 사람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자연스럽게 플러스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생에 큰 사건이 일어나면 거를 사람들은 걸러진다는데 그게 정확히 맞는 말인것 같다.
결혼식 이후에 한 번 사람들이 걸러졌고, 이번에 겪은 일련의 사건으로 인생의 -1을 주는 존재들을 더 걸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플러스가 되려면, 나를 플러스로 만드는 준비과정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마이너스인 관계를 끊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더 빠르다.
돈을 가장 쉽게 모으는 방법도 결국은 고정비용을 뺀 지출을 줄이면 된다.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주변의 -1부터 줄여나가는 일을 해보자.
사실 이렇게 주변 지인들의 관계를 점점 좁혀 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간의 추억과 정이 있어서 그런가, 보이지 않는 사슬을 한 번에 자르기 어렵다.
하지만 정말 신기한 건 -1을 버리면 0이나 +1 의 사람이 내게 올 확률이 높다. 이건 따로 설명할 수 없지만 경험으로 얻은 지혜다. 그만큼 내 평균점수가 올라가서 그런가...
나이가 들면서 마음을 터놓고 말할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한다.
물론 내 과거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줄어듦에 따라 추억을 공유할 사람도 줄어든다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달리 표현하면 앞으로 내가 걸어갈 미래를 같이 얘기할 사람은 어디든 있다는 것이다.
물론 +1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말이다.
현재 나는 인생 고립의 시기를 달리고 있다.
고립이라고 집에만 갇혀 히키코모리처럼 방 안에만 있는 그런 존재는 아니다.
정말 필요한 모임과 사람들만 만나고,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나를 플러스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고독과 고립은 전혀 다르다. 더 나은 인생의 선택을 하기 위해 상처를 줬던 유리파편들을 빼내고 있다.
누군가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길.'이라고 얘기했다.
좋은 사람. 정의가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밥을 잘 사주면 좋은 사람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용돈을 두둑히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수 있다.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기 전에 내가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짱구는 인생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인생 2회 차인가?
현대 사회에서 좋은 사람들은 호구가 되기 쉽다. 그만큼 살아남기 위해선 모두에게 착할 필요도, 좋을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칭 '사람판단 레이더'를 가질 수 있는 학습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이 학습장치는 수많은 데이터와 통계로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경험을 하지 못하면 당하게 된다. 슬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나도 겪은 걸 당신들도 겪으라고 말은 못 하겠다.
(직접경험으로 빠르게 배울 수 있지만 간접경험도 있으니 때론 돌아갈 수 있는 방법들도 찾아보자.)
좋은 사람의 정의에 대해 알아보려 수많은 에세이들을 들추고 책들을 읽었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내가 먼저 나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줄 때가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된 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누가 봐도 나를 좋은 사람이라 여기고 이곳저곳에서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거다.
인생은 정말 수없이 많은 갈림길 중에 선택(C)이다.
태어나는(B) 건 선택(C)할 수 없었지만, 죽음(D)은 선택(C)할 수 있다.
모든 결론을 죽음(D)으로 단정 짓지 말고, 좀 더 많은 길들을 선택(C)해서 나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