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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모양 Mar 24. 2021

니들이 쿠바를알아?!

남미 여행기#4. 쿠바 미소

아바나 거리를 걸었다. 어디에 갈지 정하지 않은 채 길을 나선 우리는 이끌리는 분위기를 따라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우리가 앉은자리 옆에는 조그맣게 마련된 무대가 있었다. 몇 걸음이면 닿을 만한 가까운 거리였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니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었다. 인자하게 생긴 아저씨 5명이 나와서 흥겨운 음악을 연주했다. 연주가 시작되자 투박한 선율이 사방으로 퍼졌다.


한 곡이 끝나갈 때 즈음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와아- 맛있겠다.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우리는 간단한 식사 인사를 마치고 바쁘게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였다. 골반과 다리를 씰룩거리며 박자를 타는 퍼커션 연주자 아저씨의 움직임은 경쾌했다. 그 리듬을 따라 식사하는 우리의 손놀림도 더 경쾌해졌다. 어깨가 절로 춤추게 만드는 리듬과 쾌적한 기분이 더해지니 음식도 배로 맛있었다.


연주가 흘러나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피아니스트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눈이 마주친 나를 향해 윙크하며 웃어주었다. 아저씨를 따라 나도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음날, 우리는 신 시가지를 가기 위해 말레꼰 해변을 걸었다. 중간에 만난 한 쿠바 아저씨와 아줌마가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Hola~”

“올라~”

“쿠바에 언제 왔어? 어디로 가는 중이니?”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 했지만, 아저씨는 구태여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거절을 잘 못하는 우리는 간단한 영어로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설명했다. 아저씨는 우리가 신시가지에 가고 있단 걸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희 근데 거기에 가도 볼 거 없어. 거기보단 이쪽으로 가보는 게 좋을걸. 지금 이쪽으로 가면 시가를 할인하고 있거든. 쿠바 하면 시가가 또 유명하잖아. 마침 지금 페스티벌 중이라 엄청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 구경 가볼래?”

그들은 장사를 하려는 것 같았다. 그때 문득, 나보다 먼저 쿠바로 여행을 다녀왔던 친구의 당부가 생각났다. 쿠바노들은 동양 여자애들 보면 다 예쁘다고 하니까 그들에게 속지 말고 조심하라고 했다. 사기꾼일 가능성이 99.9%이니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고 하던 그 친구의 말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쳤다. 쿠바 여행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책에서는 현지인이 쿠바에 온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어보면 한 일주일 정도 된 것처럼 둘러서 말하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 이 사람은 이미 쿠바의 수법을 알고 있겠구나 하면서 넘어갈 거라고 그랬다.


나는 책과 친구의 조언을 떠올리며, 단호하게 그리고 예의 바르게 쿠바노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제안을 거절했다

“미안해. 우린 아무도 흡연자가 아니야.”


사실이었다. 우리는 흡연자가 아니었고, 시가에는 관심이 없는 여행자였다. 하지만, 그 간단한 사실을 막상 내 입 밖으로 꺼내놓고 보니 갑자기 속이 울렁였다. 남미로 향하기 전에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남미 강도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말로만 전해 들었던 여행객 강도사건. 그런 흉흉한 사건의 주인공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들이 갑자기 흉기를 꺼내 들지 않겠지? 근데 만약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겠단 생각에서 살아 돌아가야겠단 생각으로 두뇌회전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들이 갑자기 돈을 요구하면서 위협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입가가 바짝 얼어붙었다.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긴장감이 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


그런 내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쿠바노 아저씨는 더 활짝 웃으며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오 그렇구나~ 괜찮아 괜찮아.”

함께 있던 아줌마도 우리를 향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쿠바 미소를 지어 주셨다.


그들이 우릴 해치지 않을 거란 강한 확신을 얻고 겨우 안도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 함박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음이 놓였다.


“쿠바 좋아?”

“응 아주 좋아~”

“맞아 쿠바는 좋은 곳이야. 저기 가면 살사 페스티벌을 하고, 저기로 가면 재즈클럽이 있어. 쿠바는 살사와 재즈도 유명하잖아. 거기도 꼭 구경해보렴.”

아저씨는 마지막까지 밝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쿠바를 홍보했다. 괜스레 미안해졌다. 웃는 표정이 참 순박한 사람들인데, 내가 너무 서둘러서 쿠바노에 대한 선입견을 씌운 것 같아 미안했다.



지금 기억해보면, 내가 만난 쿠바로의 얼굴들은 밝고 환했다. 그들은 먼저 다가와서 무엇을 도와줄까 물어봐 주었다. 살짝이라도 눈이 마주치면 친절하게 웃어주던 기타리스트 아저씨도, 길 안내를 해주었던 청년도, 우리에게 시가를 팔기 위해 접근했던 아저씨 아주머니도, 늦은 밤 호스텔 대문을 열지 못해 끙끙대고 있는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서 도움을 준 아주머니도 하나같이 웃는 표정과 좋은 인상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우리는 언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국적도 달랐지만, 미소 하나로 그럴듯하게 소통했다. 눈만 마주쳐도 웃을 수 있다는 것.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웃으면 그만이라는 것. 이 또한 쿠바가 일깨워준 소중한 여행의 가르침이겠지.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웃을 수 없다고?  그런 게 어딨어. 인마, 웃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그들의 쿠바 미소는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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