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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투덜이 Jul 14. 2023

나는 나를 싫어할 권리가 있다

- 흔적을 싫어하는 내가 ‘브런치’에 자취를 남겼다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더니, 마음의 변화라도 생긴 거야?”

 브런치 스토리 ‘등단’ 소식을 전했더니 친구가 던진 질문이다. 35년 넘는 인연 동안 보인 바 없는 나의 홍보활동. 어지간히 낯설게 느꼈나 보다.      


 젊은 시절, 친구들에게 누누이 말했다.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고. 알았던 사람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자취를 남기며 살고 싶지 않다고.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나날이 훨씬 많았던 시절임에도 사라지고 난 다음 누군가 나를 떠올린다는 생각만 해도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기억을 지워 ‘나 따위’가 잔재로 남지 않기 바랐다.   

  

 이런 소신 때문인지, 게으름 때문인지 사진을 정리하며 살지 않았다. 디지털 시대 이전 사진들은 비닐 봉투에 담겨 어딘가 처박혀 있을 테고 핸드폰 속 사진들은 기기 교체와 함께 사라졌다. 단기기억을 장기기억 속 추억으로 밀어 넣지 않기 위해 애썼다. 내 안의 흔적도 흔적이라는 듯.

꼬박꼬박 일기를 썼지만 쟁여두지 않았다. 일부러 버린 적은 없지만 이사와 함께 자연스레 사라졌다.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적은 것도 마찬가지. 지금은 어느 폴더에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사라진 줄 알았던 대학시절 일기 몇 묶음을 우연히 발견했다. 차마 버릴 용기는 없어 그냥 이불장 위에 올려 둔 채 모른 척하고 있다. 계륵 취급을 받은 일기장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창피하면 차라리 버려라, 버려!” 했을 것이다.     


 뿐인가, 미니홈피를 시작으로 블로그, 인스타 등 온갖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일상화된 지금까지 문 한번 두드려 본 적 없다. 댓글이나 좋아요 누른 것도 손꼽을 정도로 온라인 세상에서 나의 사회성은 바닥이다. 그러니 자신을 주제로 글을 쓰고 인터넷에 올린 다음, 그 사실을 알리기까지 한 내가 그 친구는 얼마나 생소했을까.

어색한 건 나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프로젝트 모임의 과제였기 때문이지만 큰 어려움 없이 미션에 성공했다. 별나다면 별난 나의 ‘소신’이 달라진 걸까?      


 나는 내가 싫었다. 자의식이 생긴 이후 나의 가장 엄격한 평가자는 나였다.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생김새부터 노력하면 될 줄 알았던 성격과 능력, 감정까지 평가 영역은 넓었고 하나부터 열까지 성에 차지 않았다. 그 마음을 늘 일기에 남겼다. 냉정하고 날카롭게.

어렸을 때 멋모르고 털어놓던 상처받은 마음은 나만 보는 공간에서마저 쫓겨났다.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던 순간부터 일기는 늘 채찍질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단점투성이 일기라서 외면하고 싶었고 미흡함이 가득한 나라고 여겨 흔적 없이 사라지길 원했던 걸까. 내가 나를 싫어할 이유는 차고 넘쳤고 마음으로, 기록으로 새기길 반복했다. 과거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 의식 개혁을 위해 자아비판을 생활화했다던데 나라면 늘 최고점을 받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자기비판은 매섭고 집요했다.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침묵했다, 목표를 채우지 않았다, 싸가지 없이 말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한방 먹이지 못했다, 힘들면 얼마나 힘들다고 있는 대로 티 냈다, 어차피 또 그럴 거면서 반성은 왜 하냐 등등. 꾸지람은 돌팔매가 되어 나를 때렸다. 할 수만 있다면 내 피부터 싹 다 갈아치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끔 스스로를 다독이는 넉넉함도 있었지만 곧 정신 번쩍 차리고 자기 연민을 경계했다.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건 부족한 나를 싫어하는 나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엄격하기 짝이 없는 내가 지긋지긋했다. 가족도, 친구도 해주는 지지를 왜 정작 스스로는 못하지?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일까?      


 나도 마음에 차지 않는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 리 없지, 그러니 흔적 따위 남기며 살지 말자, 그들이 기억하지 못해도 상처받지 않도록 선수  버리자.

젊은 날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 힘주며 살아온 것은 ‘나를 기억해 줘’의 다른 말이었다. 서툴고 부족한 나를 알아달라는 치기 어린 버전이라고나 할까.     

 

 8년 전 암 치료 중 스트레스 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얼마 후 신경정신과에서 연락이 왔다.

“결과를 보니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지려는 성향이 정말 강하세요. 발병 원인이나 현재 힘든 점을 묻는 질문에 환자분처럼 모든 걸 자신 때문이라고 응답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러니 혼자 감당하느라 얼마나 애쓰고 있겠어요. 억지로 생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해서 자신이 힘겨워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아차렸으면 좋겠어요.”     


 정통으로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힘겨워하고 있다’가 마음에 닿아서. 얼마나 자신을 마음에 안 들어하는지 구구절절 알았지만 이토록 나를 힘들게 했는지 몰랐다. 생각을 바꾸려 무던히 애써봤지만 잘 되지 않아 한심해하기만 했다. 온갖 책이, 세상이 자신을 좋아하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라고 외치는데 바뀌지 않는 마음이 야속했다. 암을 이기려면 바꿔야만 한다고, 달라져야만 한다고 여겨 스스로를 더 몰아붙였던 게 아닐까. 힘든 마음이 삐져나올 정도로 말이다.


 생각을 180도 바꿨다. 싫어하기를 멈출 수 없다면 차라리 나를 싫어할 권리를 주기로. 어디까지 매정할 수 있는지, 마음에 들지 않는 끝은 어디인지, 정말 못마땅한 건 맞는지 해볼 만큼 해보자 결심했다. 덜 힘들 수 있는 방법으로 달리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나를 달달 볶아대던 ‘00해야만 한다.’만이라도 놓아보자 했다. 싫어하면 싫어하는 대로 그냥 두었다. 그 마음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큰 변화가 있었냐고? 나를 좋아하게 되었냐고?

천만에. 여전히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중병을 앓았지만 듬성듬성 운동하고 달달한 간식을 놓지 못하는 나약함도, 마음이 다급해지면 여지없이 칼날 같은 말을 쏟아내는 못된 성질머리도, 저질렀으면 그걸로 끝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후회를 계속하는 습관도 못마땅하기 짝이 없다.      


 다만 ‘나를 싫어하는 나’를 비난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고질병이 또 도졌구나. 지치면 말겠지.’하고 만다. ‘내가 싫다’는 ‘나 지금 힘들어’나 ‘잘하고 싶어’의 또 다른 얼굴임을 이제는 안다. 하여 못난 나를 예전처럼 진저리 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여전히 투덜대지만 말이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아버지 병간호와 비대면 시대 이후 등장한 신인류 2학년을 만나 지칠 대로 지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방향을 잃은 원망과 무력감, 지친 육신을 드라마 다시 보기와 게임으로 달랬다. 비생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스스로가 한심했지만 나를 싫어할 권리를 마음껏 행사하며 그냥 두었다. 지금 내게 남은 여력이 딱 방바닥 벗 삼아 쉴 만큼이라 그런 거라 여겼다.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달리 해결할 힘이 생기면 일어설 나를 믿었다.     


 조바심 내지 않고 시간이 흐르니 귀가 열리고 눈이 뜨였다. 책 읽기에 그치지 말고 글쓰기도 관심을 가져보라는 독서모임 지인의 조언, “집요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너에 대해 글을 한번 써보면 어때?”라는 친구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도서관 홈페이지에 올려진 ‘1인 1책 쓰기 프로젝트’ 홍보 글이 눈에 박혔다.

인스턴트로 끼니 해결하듯 한숨 돌린 순간이 없었다면, 그렇게 쉴 수밖에 없던 나를 매섭게 몰아세우기만 했다면 기회가 왔을까?     


 나는 나를 싫어할 권리가 있다.

덕분에 못마땅하기만 하던 나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어디까지 나를 싫어할지 궁금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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