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엉덩이가 무겁다는 말을 듣는 나는 하고 싶은 일도, 가고 싶은 곳도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데도 유일하게 가보고 싶은 나라가 핀란드다. 아니, 살아보고 싶은 곳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어렸을 때 즐겨 보았던 동화 『무민 시리즈』가 탄생했다는 것 말고는 딱히 아는 바 없었던 핀란드가 살아보고 싶은 곳이 된 이유는 2007년 제작된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 때문이었다. 헬싱키에 ‘카모메(갈매기라는 뜻)’라는 일본식 식당을 차리게 된 주인공 사치에가 자신만의 속도로 서두르지 않고 식당을 정착시켜 가는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데 구구절절 나오지는 않지만 짐작되는 공통점은 단 하나,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20년간 병든 부모님을 간병하다 두 분을 여의고 핀란드에 온 마사코는 오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아버지 기저귀를 가는데 여기에서 에어기타 대회가 열린다는 뉴스를 봤어요. 그런 시시한 것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좋아 보였어요. 어딘지 여유 있어 보이고 쓸데없는 일에 얽매이지도 않고, 느긋하게 사는 인생.”
에어기타 대회라니, 실제로 있나 바로 검색을 해보았다. 세상에, 진짜로 있었다. 투명 기타를 누가 실감 나게 치는지 겨루는 행사로 무려 3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었다. 총 대신 에어 기타를 들고 평화를 노래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고 하니 시작은 절대로 시시하지 않았다. 아무튼 진짜 기타가 있는 듯 열과 성을 다해 ‘연주’하고 실제로 듣고 있는 것처럼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 역시 신기하게만 보였다.
뿐인가, 이 나라엔 사우나 오래 참기, 휴대폰 멀리 던지기, 부인 업고 달리기 대회도 있었다. 그런 ‘시시한 것’을 다 같이 즐기고 재미있어할 줄 아는 나라, 소소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여유를 탑재한 사람들이 나 역시 마사코처럼 부러웠다.
느긋함. 이 석자가 주는 울림을 나는 알지 못한다. 사실 지금 핀란드에 갈 수 있다 해도 에어기타를 튕기는 즐거움을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대회 참가는 고사하고 관객으로 있어도 ‘기타 없는 것 다 알거든.’이라는 표정이 얼굴에 가득한 채 멀뚱멀뚱하고 있을 것만 같다.
휴대폰을 멀리 던지는 게 그리 재미있을 수 있다니 말이 되는가. 누가 내 옆에서 이렇게 놀고 있다면 나는 ‘으이그, 돈이 썩었다. 휴대폰이 장난감이냐? 나 때는 말이야. 니들처럼 놀다간 뼈도 못 추렸어.’ 속으로 이러면서 아래위로 그들을 훑어가며 지나가겠지. 꼰대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절반 넘게 살아온 지금까지 해야만 하는 일들에 허덕이며 살아왔다. 학생 때는 시간 맞춰 학교에 가고 주어진 공부를 감당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몸이 아픈 날, 기침 소리만 내도 뺨을 올려붙이는 선생님이 무서웠지만 엄마는 “죽어도 학교에 가서 죽어.”라며 나를 내몰았다. 학교 빠지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살았다. 격변기에 대학교를 다녔던 탓에 치열하게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 이들을 보며 늘 마음은 번민과 부채의식으로 가득했고, 청춘을 즐기는 삶은 사치라 여겼다.
사회에 나와서도 나 자신을 책임지지 못하는 삶이 될까 전전긍긍했다. 직장을 얻지 못했을 때는 그 시간이 계속될 것 같은 두려움에 조마조마했고, 일터가 생겼을 때에는 살아남느라 정신이 없었다. 집 한 채 없이 늙어가게 될까 봐 늘 계산기를 두들겼고, 잠이 들 때면 오지도 않은 노년기를 상상하고 불안해하느라 꿈속에서조차 바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건만 가족 걱정도 도맡았다. 부모형제간에 해결하고 중재할 일은 왜 이렇게 많은지, 하루하루가 너무 숨 가빴다.
몇 년 전, 캐나다 여행에서 취업 이민한 옛 후배를 만난 적이 있었다. 번듯한 공기업에 다녀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그 친구는 그 잘나가는 자리를 훌훌 털고 떠나버려 아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12시간 일하고 4시간 술 마셔야 끝나는 일터가 지긋지긋하다는 게 이유였다. 가족의 해체는 물론이고 생명의 위협마저 느껴 한국을 등진 지 3년째,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물원에 정원사로 취직하여 민박을 겸한 호숫가 이층 집에서 살고 있었다. 한국에선 부의 상징인 요트까지 렌트하고 유유자적 생활하는 모습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네가 직접 잡고 요리한 연어 안주를 다 먹어보다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모습이네. 정말 보기 좋다. 가족들 모두 행복해하지?”
“물론이지. 그런데 나는 아직도 한국 때를 못 벗은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술을 적당히 마시기가 진짜 힘들어. 지난번엔 술 먹고 필름 끊겨 2차 가자며 소리소리 질렀다고 하더라고. 이곳 사람들은 가든파티에서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만 마시지 절대 그러는 법 없거든. 다음날 나를 보는 눈이 어찌나 차가운지, 모임에서 퇴출될 뻔했어. 그 뒤론 정신 바짝 차리고 술 먹느라 고생 좀 했지.”
저녁이 있는 삶을 주어도 고주망태가 되는 저녁 밖에 몰랐던 그는 ‘정신 바짝 차리고’ 느긋함을 배워가느라 애쓰는 중이었다. 에어기타를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다행이지만 한편 아득해지기도 한다. 나만 달라지면 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래서 사치에도, 마사코도 핀란드에 가야 했던 걸까. 모두가 달리고 있다고 느껴지면 도저히 나 혼자 내릴 엄두가 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나는 언제쯤, 어디에서 에어기타를 즐기게 될까. 굳이 핀란드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각종 ‘시시한’ 대회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참여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날엔 오지 않은 날들을 불안해하느라,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얽매이느라 나를 소모하지 않고 느긋하게 즐겨볼 것이다. 그때 내가 짓게 될 표정이 진심으로 궁금해진다.